우리는 단짝_함께 결정하고, 함께 성장하고

인천교구 노동사목 김은숙 사무국장, 김영희 수녀, 김윤석 신부

함께 결정하고, 함께 성장하고

지금이야 노동조합이 있는 것이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과거에는 노동조합 하나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다. 그 당시에는 딱히 모일 곳 없는 노동자들이 모여 밥도 나누고 생일도 챙기던 곳이 지역의 노동사목 공동체였다. 그렇게 각 지역에서 노동자들의 필요를 채워주던 부천, 부평, 주안의 노동사목을 통합하여, 2013년 인천교구 노동자센터가 개소했다. 갓 태어나서 손길이 더 많이 필요한 이 노동자센터를 아이 돌보듯 키워내는 김은숙 사무국장, 김영희 수녀, 김윤석 신부를 만났다.

김윤석 신부는 자리에 앉자마자 센터 소개에 여념이 없었다. 김 신부의 소개대로 노동자센터는 알찬 공간들로 가득했다. 활동가들이 사용하는 사무실 옆에는 노동 문제를 상담해주는 노무사의 상담실이 있고, 그 아래에는 ‘세상의 작은 모퉁이’라는 뜻의 경당이 있다. 경당의 이름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일화에서 따온 것인데, 기도하는 공간 외에도 함께 모일 수 있는 공동체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2층에는 이름부터 눈길을 끄는 ‘맘에 드는 가게’가 있었다. 옷을 리폼하여 만든 물건들을 판매하고, 바느질 교육도 이루어진다. 1층 카페를 찾으면 MBTI와 에니어그램 등 심리검사와 상담도 접할 수 있다. 유쾌한 음악이 들려오는 1층 카페에 앉아 세 파트너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세 파트너 중 노동사목 현장에 가장 오래 있었던 김은숙 사무국장은 파트너십이란 말을 들으니 선배들의 이야기가 먼저 떠오른다고 했다. 노동사목에 함께 하기 전 본당에서 경험한 신부님들은 멀고 높은 곳에 있고 대하기 어려웠는데, 노동사목에 함께 하던 선배들은 함께 활동하던 사제, 수도자와 같이 살다시피 했다고 한다. 사제가 연탄을 갈다가 자꾸 꺼트리면 잔소리를 하기도 하고, 복음을 향한 여정을 함께 하는 평등한 관계였던 그분들이 생각난다는 이야기였다. 김 사무국장이 노동사목에 처음 발을 내딛었을 때에는 지도 사제도 본당과 함께 노동사목을 맡고 있어서 충분히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성심회 수녀님들과 호흡을 맞춰서 함께 일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수녀님들의 생활나눔을 보면서 소진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방식을 배우게 되었다고 했다.

“수녀님들의 생활나눔을 보고, 또 함께 생활을 나누면서 제가 경험한 것은 실무자들이 양성된다는 것. 다른 노동 단체보다 여기에 있으면 내가 성장을 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활동가들이 소진되고 힘이 들고 헌신만 한 거 같은 느낌을 갖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 오래 있었던 친구들의 경우 여기서는 내가 성장하는 거 같다는 말을 많이 해요. 자신의 역할을 통해서도 그렇고, 서로 삶을 나누는 과정에서도 성장한다는 느낌이 이 일을 계속하게 하는 동력인 거 같아요. 그렇게 20년 가까이 있었던 거죠.” (김은숙)

서로 성장에 영향을 주면서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온 실무자들은 사제와 수도자가 바뀌는 과정에서도 노동사목을 이어오고 있었다. 사제와 수도자와의 파트너십에 앞서 실무자 간의 파트너십을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었는지 물어보니, 대부분의 일을 함께 하고 있다고 했다. 노동사목의 특성상 혼자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가급적 나의 일과 너의 일로 구분 짓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물론 노동자센터로 통합이 이루어지면서 전담 영역을 나누기는 했으나, 전담하는 사람들이 기획을 해오면 함께 참여하여 일을 한다. 김영희 수녀는 하나의 일만 맡아서 하면 그 사람은 얼마나 힘들겠냐며, 함께 모여 충분히 이야기하는 월요일이 있으니 괜찮다고 웃었다.

월요일에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란, 회의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김은숙 사무국장이 말한 것처럼 생활나눔의 중요성을 공유하는 실무자들과 사제, 수도자는 월요일 오전 시간을 온전히 생활나눔을 하는데 동의했다고 한다. 최근에 김영희 수녀는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실무자들을 위한 미사를 하자고 제안하고, 함께 교황권고를 읽자고 초대하기도 했다. 이런 나눔이 가능한 것은 서로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결정된 것에는 최선을 다해 따르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주저 없이 이야기한다.

“월요일 회의도 오전에는 생활나눔 하고, 그 중에 중요한 사안은 좀 더 깊게 이야기를 나눠요. 그리고 중요한 문제의 대안이 있으면 오후에는 제안을 하고요. 일에 관한 논의만이 아니라 과거의 일을 돌아보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것 같아요. 또 자기 생활을 나누는 것이 함께 하는 일의 질을 만들고요.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마음인지 이해할 수 있으니까 서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최근에는 복음의 기쁨을 함께 읽자고 제안을 했어요. 놀라운 것이 잠시 짬이 나면 다들 그걸 읽고 있어요. 다 읽는 것보다 그걸 읽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거죠. 하라고 잔소리하지 않아도, 함께 결정한 것에 대해 따라가겠다는 의지가 있는 거죠.” (김영희)

“사제하고 수도자 하고 실무자의 세 파트가 있는데, 워낙 가톨릭이 보수적이고 성직자 중심으로 이끌어져 나가기 쉽죠. 여기 와서 느낀 것은 같이 이야기를 공유하고, 같은 체험을 나누고, 함께 하려고 하는 모습들이 곳곳에 담겨져 있다는 거예요. 서로 솔직하게 다 이야기해요. 대화라든가 터놓고 이야기 하는 문화가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사소한 의견대립이나 그런 건 어디나 그렇듯 있어요. 그런 문제가 있으면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우린 목소리들이 다 커서 그냥 같이 이야기해요.” (김윤석)

대화와 나눔의 문화가 탄탄하게 자리 잡은 노동사목팀이지만 통합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세 파트너는 가장 어려웠던 순간으로 통합을 하는 과정에서 합의하는 부분을 꼽았다.

“사실 통합할 때는 힘이 들었어요. 함께 하는 사람들도 많고, 다른 공간을 쓰다가 공간을 합친다는 것이 새롭게 호흡을 맞춰야 하는 거니까요. 서로 양보하고 합의해가는 과정에서 6개월 정도는 정말 힘들었어요. 서로 내 것을 내려 놔야 하는데, 내가 놓을 건지 네가 놓을 건지 이야기하면서 꽤 지쳤죠. 마지막은 내 것을 양보하면서, 노동사목이 30년 넘게 올 수 있었던 힘은 뛰어난 한 사람 때문이 아니라 시대의 목소리에 함께 귀를 기울이려고 했던 노력에 있었다는 걸 인정하게 된 거 같아요. 첨예하게 의견이 대립할 때, 함께 결정하고 나면 결국 그분이 하실 거라는 믿음. 불안정하고, 뭔가 석연치 않고, 입장 차이가 있어도 최선을 다하면 나머지는 노동자들 스스로 채워가는 부분도 있을 거고요. 이렇게 받아들이고 나서 저희끼리도 우린 참 성숙한 인간이라고 이야기 했어요.” (김은숙)

힘든 통합의 시간을 지나서 이제는 더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고, 실수하는 사람을 보는 시선도 더 너그러워졌다는 이들. 함께 하는 일의 재미를 더 깊이 느끼고 있지만 아직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다음 세대를 찾는 일이라고 했다. 매년 노동자 주일을 기억하고 노동자센터가 생길만큼 인천교구의 노동사목에 대한 지원은 풍부한 편이지만, 건물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사목의 역사를 이어갈 다음 사람이라고 입을 모았다. 교회에 청년과 중년 사이의 중간 세대가 없는 어려움은 노동사목에도 해당하는 듯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시간으로 인간적인 만남의 순간을 꼽고, 끊임없이 나누고 대화하는 문화가 자리 잡은 이 팀이라면, 다음 세대의 누군가 오더라도 차이를 넘어서 함께 일하는 파트너가 되는 일이 조금 더 쉽지 않을까 싶었다. 새로운 사람이라도 이 팀에 온다면 함께 결정하고 함께 성장하는 기쁨을 곧 맛보게 될 테니까.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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