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는 복음 – 우리 곁의 예수를 알아보려면

  김의열

우리 곁의 예수를 알아보려면

5/4 부활 제3주일 / 루카 24,13-35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우리가 예수를 주님으로 맞아들이고 만인의 구원자로 고백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2천 년 전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삶을 통해 보여주신 복된 소식은 그 분의 죽음과 부활로 인해 비로소 완성됐다. 예수님은 죽었다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그러나 단지 죽기 전 모습으로 살아나신 게 아니었다. 여기에 예수님 부활의 참 뜻이 담겨있지 않나 여긴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야기를 잘 떠올려보자.

예수님의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이 굴러나 있고 시신이 없어진 사실을 막달라 마리아와 제자들이 알게 된 날, 예수의 제자 둘이 예루살렘 근교의 엠마오로 가고 있었다. 부활하신 예수가 그들에게 다가와 동행하며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걸었다. 그런데 문제는 두 제자 모두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루가 복음사가는 ‘그들의 눈이 가려’ 알아보지 못했다고 표현했다. 이미 부활하신 예수는 3차원의 물리적 세상과 인간의 감각을 뛰어넘는 높은 영적 차원의 존재로 올라섰기 때문에 ‘눈이 가려진’ 세상 속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존재를 곧바로 알아차릴 수 없었다. 엠마오에 도착하여 저녁밥상을 마주한 자리에서 빵을 들어 찬양할 때 비로소 제자들은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봤고 그러자 마자 예수님은 제자들의 눈앞에서 사라진다. 죽기 전 나자렛 사람의 몸을 입은 예수님이 아니라, 온전한 영적 차원으로 드높아져 육체와 물리적 공간과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예수님의 모습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렇듯 온전한 영적 차원으로 드높아지셨기에 시간과 공간과 형태를 뛰어 넘어 자유자재한 모습으로 늘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부활한 예수님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매일 만난다. 그 해답이 바로 예수님 말씀에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이 곧 나’라는 말씀이다. ‘헐벗고 굶주리고 억압받는 이들’이 곧 예수요 ‘가난한 이들의 고통에 함께 참여하는 이들’이 곧 예수의 친구요 나아가 예수 자신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한 분의 예수님이 곧 우리 곁을 떠나려 한다. 성모병원 중환자실에서 힘겹게 이생의 끝자락을 보내고 계신 예수회 정일우 신부님이시다. 이 글이 책에 실려 나올 때쯤이면 아마 그 분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는 높은 영적 차원으로 드높아져 우리에게 늘 다시 나타나실 것이다. 부활하신 그 분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적인 눈’이 열려야 한다.

신부님은 1960년 미국에서 예수회 신부가 되자마자 한국으로 건너와 오십여 년 동안 이 땅의 가난한 이들과 함께 울고 웃고 함께 몸을 부대끼며 사셨다. 70년대 초반부터 제정구 선생과 함께 빈민운동에 뛰어들어 시흥의 복음자리 마을을 함께 만드셨고, 80년대 말 상계동 철거민들과 함께 살며 그들의 눈물겨운 투쟁에 함께 했다. 1994년, 가장 소외된 사람들인 농민들과 함께 사시려고 솔뫼 농장이 있는 우리 마을로 내려와 2002년 초까지 9년 가까운 세월을 우리와 함께 울고 웃고 지내셨다. 신부님은 결코 사람들 앞에 나서서 이끌거나 권위를 가지고 설득하려 하지 않으셨다. 사람들 속에서 늘 함께 어울리고 이야기를 듣고 함께 웃고 함께 울어주셨다. ‘보이지 않는 영혼의 힘’, ‘함이 없는 함’ ‘말 없는 가르침’ 이 무엇인지를 손수 몸과 삶으로 보여주셨다. 교리나 교계제도나 사제라는 신분에 붙들리지 않고 늘 경계가 없는 삶을 사셨다. 어느 누구와도 어울리고 마음을 열었으며 천진무구한 웃음과 유머를 잃지 않으셨다. 당신은 곧 살아있는 예수였다.

신부님과 함께 웃고 울고 부대끼고 일하고 술 마시고 영혼을 나눴던 시간들이 그리워진다. 나에겐 영원한 스승이자 아버지이자 친구이자 영혼의 동반자였던 분, 신부님과 만나고 나누고 교류했던 시간들은 내게 한없는 은총이자 생애 최고의 선물이었다. 이생에서 신부님께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만이 아실 터이니 아버지께 깊은 마음으로 기도드린다. 부디 남은 시간을 잘 이겨내시고 가장 편안하고 충만한 상태로 아버지의 나라에 이르시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나 역시 부활한 당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고, 나아가 아버지의 나라에서 당신과 감격스럽게 만나기를.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5월호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