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속으로 걸어 들어간 본당 ①>

경동현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연재를 시작하며 마을에서 산다는 것

우리나라의 텃새 중에 물까치라는 새가 있다. 다른 많은 동물들이 그러하듯 무리지어 생활하는 물까치는 5∼7월에 6∼9개의 알을 낳아 17∼20일 동안 품는다. 부모 새는 알을 품을 때 주변 경계를 하며 둥지를 오가다가 새끼가 태어나면 교대로 먹이를 물어 나르기 바쁘다. 사람 눈을 의식하지 않는 새끼 키우기의 바쁨은 인간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놀라운 사실은 새끼가 태어나면서 많은 동료 물까치들이 모여든다는 점이다. 무슨 연유인지 알 방법은 없지만 집단으로 새끼를 보호하려는 본능 때문이라는 게 조류학자들의 이야기다. 둥지 아래로 다른 짐승들이라도 지나가면 동료 새들은 돌아가며 저공비행으로 쫓아 보낸다. 물까치에게 새끼 키우기, 종을 보존하는 일은 진지하고 떠들썩하게 동료들이 참가하는 큰일인 셈이다.

물까치의 새끼 키우기와 달리 부모들의 아이 키우기는 사뭇 다른 요즘이다. 불과 30~40년 전만해도 닫힌 공간에서 홀로 아이 키우는 일은 거의 없었다. 지금처럼 핵가족도 많지 않았던 시대라 가족들과 동네 어른들의 잔소리와 관심을 받고 아이들은 커나갔다. 8남매이셨던 아버지, 7남매이신 어머님이 그렇게 사셨고, 4남매인 내 형제들도 요즘처럼 병원이 아니라 마을에 사는 잘 아는 산파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태어나고, 가족과 마을 어른들이 돌보는 가운데 자랐다. 물까치의 새끼 키우기와 어딘가 닮아 있는 모습이다.

새 대통령의 아버지가 대통령으로 있던 시절에 불었던 근대화의 바람은 잘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일종의 집단 최면 탓에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거의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여성들도 ‘근대화의 주역’이라며 일터로 내모는 사회 체제가 자리잡아가면서 돌봄의 문화가 살아있던 마을 공동체는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핵가족이 대세로 자리를 잡아갔고 ‘엄마는 강하다’, ‘모성의 힘’, ‘아이 키우기는 엄마의 천직’ 등 엄마 혼자에게 책임을 떠맡기는 틀에 박힌 말들이 세상에 퍼져나갔다. 이런 칭찬(?)을 들으며 새롭게 생겨난 어머니상의 중압감에 엄마들은 병들어 갔고, 가정과 마을은 무너져갔다.

20년 전 한국 천주교회는 소공동체 운동을 교회가 가야할 미래 비전으로 제시하며, 소공동체 중심의 교회가 되기 위한 운동을 전국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앞서 말한 가정과 마을의 공동체적 가치가 무너지기 시작한 시기와도 연결된다. 이런 현실에서 교회 당국은 교회 공동체의 친교마저 약화되고, 중산층이 대다수인 신자들의 가치관이 복음적 가르침 보다는 세속적인 가치를 좇는 현상에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꼈다. 이런 맥락에서 소공동체 중심의 교회는 신자들의 친교를 강화하고, 복음나누기를 통해 복음적 가치관으로 신자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소공동체 운동 20년이 지나도록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공동체적 가치가 가정에서나 마을에서나 회복되고 있다는 징후는 좀처럼 찾기 어려운 현실이다. 소공동체가 본당 구역반 모임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공동체의 해체라는 거대한 시류에 교회도 압도된 형국이라고 보는 것이 솔직한 고백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앞으로 연재하게 될 <마을 속으로 걸어 들어간 본당> 기획은 ‘마을 살리기’,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등 다양한 이름으로 사회 전 분야에서 활발하게 생겨나는 대안운동의 사례를 본당에서 시도해 보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획하였다. 소개하게 될 사례나 정보들을 본당에 적용하는 일이 자칫 본당 물정 모르는 순진한 발상이라 생각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구조를 바꾸지 않고, 혹은 생각이 바뀌지 않아서 이루지 못한 숱한 본당 활동의 쓰린 경험을 갖고 계신 분들이라면 더욱 그럴 수도 있겠다.

국내 처음으로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시작된 서울 마포의 성미산마을은 공동체적 가치가 살아있는 마을운동의 사례로 이야기되는 곳이지만 마을 운동의 출발이 됐던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처음 시작은 아이들을 함께 키워보자는 몇몇 엄마들의 소박한 희망에서 출발한 것이다. 제도의 권위가 주는 무게감에 내가 속한 본당이나 공동체 안에서 무얼 할 수 있겠는가하고 지레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는 말씀을 몸으로 살려는 분들에게 첫 발을 뗄 수 있는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용기 내어 시작해 본다.

그들만의 친교를 넘어서기 위한 대안 공간 : 본당 밖 카페나 도서관이 가능해?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가 발간한 단행본 <독서교육과 교리교육, 성인 독서사목의 실제>(2010년 12월 발간,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누리집 자료실에서 내려 받기 가능)를 보면 본당에서 본당 신자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을 위한 북카페나 도서관 만드는 일이 쉽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독서사목의 내용과 형식이 여전히 ‘신자 중심’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공간 활용에 있어서도 본당 안에 도서관이나 카페를 만들다 보니 지역주민들의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고 봉사자에만 의존하다 보니 운영 시간도 제한적인 탓이다.

먼저 카페 사례를 보자. 천주교의 경우는 마을 주민의 출입이 자유로울 수 있게 본당 건물 구역 밖에 도서관이나 카페를 연 사례를 찾기가 어려웠다. 개신교의 경우에는 문화목회를 표방하며 최근 들어 교회 건물 구역과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카페가 등장하고 있다. 한국사회에 커피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에 맞춰 교회도 지역주민에게 필요를 채워주고 동시에 복음을 전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겠다. 대부분 커피 값은 주변보다 저렴하며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수익금으로 불우이웃을 돕거나 장학금으로 사용하는 공익적 성격의 카페가 대부분이다. 본당 차원에서 이런 성격의 카페를 개설하기 원한다면 국제구호개발 NGO 월드휴먼브리지(http://www.whb.or.kr)의 공익사업단이 추진하는 공익카페 ‘파구스’(헬라어로 ‘언덕’이라는 의미)의 지원 프로그램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공공기관이나 종교단체, 기업, 대학 등은 공간기부와 시설비지원을 하고 공간을 이용하는 개인은 파구스의 ‘착한 커피’ 한잔을 소외된 이웃에게 따뜻한 사랑을 나눠 줄 수 있다. 또한 매장에서 음악회나 전시회, 강좌 등을 개최함으로 다양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도 사용 가능하다.

소장님

지난 2012년 말까지 ‘파구스’ 사업단의 지원 프로그램으로 전국에 18개의 공익카페가 생겨났다. 가장 최근에 개점한 천안의 남산교회는 교회 건물 바로 건너편에 카페를 개점한 경우로 교회 울타리 넘어서기를 주저하는 일반인들이 이용하기에 부담이 없도록 했다. 가격도 착해서 아메리카노 한잔이 1,500원, 생과일주스는 1,000원이다. 커피를 만들고 나르는 일은 자원봉사자가 맡거나 임금을 주기위해 고용한 지역의 어려운 이웃중 누군가가 하게 된다. 그래도 수입이 발생한다면 전액을 교회가 목적한 사업에 사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파구스 천안남산점’은 이렇게 파구스의 창립이념과 천안남산교회가 추구하는 가치가 만나 태어났다.

<파구스 18호점 개소식, 천안남산교회, 2012. 12. 9.>

공익카페 파구스의 오픈과 운영기술을 제공하는 월드휴먼브리지 측은 “한국교회가 전도가 안되고 있다고 하고, 개신교인구도 800만으로 줄었다고 하는데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교회내에서 신자들끼리만 친교하고 이웃을 섬기는 일이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공익 카페 운영이 교회가 지역과 소통하고 이웃을 섬기는 공동체로 성장하는 도구가 되기를 기원했다. 카페 개점을 위한 노하우와 실제적 도움을 원한다면 월드휴먼브리지(02-2277-2131~2)로 문의하면 되고 개점경험과 과정을 듣고 싶다면 천안남산교회(041-908-5435)에서 들을 수 있다.

소장님2

공익카페 파구스의 사례 말고도 카페나 작은도서관 등은 마을의 공동체적 가치를 살린다는 차원에서 지자체의 지원도 가능하다. 대표적으로 서울시의 “주민 커뮤니티 공간 구축” 지원 사업을 꼽을 수 있다. 민간싱크탱크 <희망제작소>의 상임이사였던 박원순 서울 시장이 그간의 마을 살리기 운동 경험을 서울시정에 반영하면서 지난해 서울시 마을공동체 기본계획이 수립됐다. 이 기본계획 가운데 주민들이 모이고 소통하기 위한 다목적 커뮤니티 공간에 대한 운영 지원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카페 나 도서관 운영을 위한 지자체의 지원도 가능하다. 서울시의 마을공동체 기본계획에 따른 지원 사업은 다음과 같다.

<서울시 지원을 받은 종로구의 실버북카페, 삼가연정>

<북 카페 조성 지원>

북카페

서울시 사례 말고 작은 도서관의 경우는 지자체 마다 ‘작은도서관 진흥’을 위한 법적 지원 제도가 대부분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지원 규모와 방식은 조금씩 다르더라도 작은 도서관의 건립이나 운영에 대해 건립비, 리모델링비 지원, 독서문화프로그램과 같은 콘텐츠 개발, 보급 등과 같은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제한된 본당 예산 규모만으로는 본당과 독립된 공간을 마련하고 지역주민과의 친교를 위한 장소로 활용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사례에서 보듯 뜻만 있다면 외부 자원들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 2013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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