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는 복음 – 그쪽으로 가면 안 돼!

배안나

그쪽으로 가면 안 돼!

5/11 부활 제4주일 / 요한 10,1-10

아들 둘을 키우는 제가 참 자주 하는 말입니다. 특히 올해 여섯 살인 둘째에게 그렇습니다. 맏이로 자란 저나 남편, 그리고 큰애에게는 없는 애교를 장착하고 태어나 많은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 꼭 하지 말라는 것을 많이 해서 많이 혼냅니다. 오늘도 내리막길에서 뛰다가 다치고, 계단을 내려오다 넘어지고 또 다쳐서 울었습니다. 큰애도 만만치 않습니다. 잠든 아이들의 얼굴은 천사 같습니다. 원래는 천사를 닮았을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 잊지 말라고 사람이 자라는 어느 순간 아로 새겨놓은 게 바로 잠든 아이의 얼굴일거란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서 어제 했던 그 반성을 또 합니다. ‘소리 좀 적게 지를걸, 화 좀 덜 낼걸, 조금만 참을 것을…….’ 하면서 말입니다. “안 돼” 라는 말을 하면 안 된다고 어지간한 육아서적에는 다 써 있지만, 저 말을 참 많이 합니다. 그리고 압니다. 저도 부모님이 하지 말라는 것을 엄청나게 많이 하면서 자랐다는 것을요. (친정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넌 더 했어!”)

부모가 되면서 얻은 축복 중 하나는, 그냥 빤한 이야기 같았던 성경이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것입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예수천국 불신지옥, 예수님 말 잘 들으란 소리 아닌가? 난 미사도 잘 나가고, 가끔 묵주기도도 바치고, 나름 이웃을 생각하며 사는 것도 같고, 이 정도면 괜찮은 양이 아닌가?’ 라는 엄청난 착각 속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과연 양이 맞는지에 대한 정체성의 문제부터 시작해서, 착한 목자인지, 도둑이며 강도인지 자꾸 되돌아보게 됩니다. “내가 과연 부모 노릇을 잘 하고 있는 걸까? 하느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이 아이를 하느님의 뜻대로 잘 키우고 있나? 지금 얘한테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라는 생각들로 괴로운 밤을 보내기 일쑤입니다. 아이들을 보면서, ‘왜 저렇게 하지 말라는 걸 하는 걸까’ 라며 혀를 끌끌 차지만 웬걸. 어른들은 절대로 아이들에게 저렇게 하지 말라는 말 할 자격이 없다는 걸 요즘 많이 깨닫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저희들을 키우시면서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너희들은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선물이니 부모님에게 잘 키워보라고 맡겨주셨다고요. 어렸을 때는 이 말이 무슨 소리인지 잘 몰랐습니다. 맏이라 유난히 더 많이 혼났던 저는 감히, ‘하느님이 주신 선물을 이렇게 혼내도 되는 거야?’ 하며 구시렁거렸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저렇게 툴툴거리는 와중에도 삶의 중심은 하느님에게 있고, 옳은 것, 선한 것, 더 나은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믿음을 알게 모르게 심어주신 덕택 인 것 같습니다. 그나마 제가 이렇게라도 사람노릇 하면서 살 수 있는 건 다 부모님 덕분이란 생각을 머리카락이 반 쯤 세고 나니 알게 됩니다.

이번 성서구절을 묵상하면서, 여행스케치의 ‘진실에 관하여’ 라는 노래를 자주 찾아 들었습니다. 노래 가사 전부가 참 좋지만, 제 마음에 와 닿는 가사는 이 부분입니다.

때로는 진실 같은 거짓말들이 너의 삶을 속인다고 해도

흐려진 하늘을 보면 구름 뒤엔 가려진 햇살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또 많은 시련들 속에서 견딜 수 있는 오직 하나의

의미라는 걸 잊지 마 이 노래처럼 내 마음처럼

예수님께서 “진실로 진실로” 라는 말씀을 하실 때도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매 순간 나의 말과 행동은 얼마나 진실 한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 반복해서 떠오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런 간절한 마음을 듣는 사람은 몰라도 너무 모릅니다. 굳이 성경책을 펼칠 필요도 없이, 이 시대에 예수님이 오신다면 저도 꼴사납게 잘난 척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눈 먼 사람이 눈을 뜨게 되는 극적인 순간처럼 말입니다. 삶이 바뀌는 순간은 이렇게 절박하고 진실한 바로 그 때라는 것을 꼭 겪고 나서야 압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생명은 태중에 있는 아기의 쿵쿵 뛰는 심장박동으로부터 시작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생명의 힘이 많은 시련들 속에서 견딜 수 있는 오직 하나의 의미로 새겨지는 것. 그것이 예수님의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마음의 눈을 감고 있으면 너무나 뻔하고 옳은 것들을 피해 가는 신기한 능력이 생깁니다. 그러나 머리와 마음이 서로 다른 길을 바라보는 그 순간부터 행복은 내게서 멀어지지요. 예수님은 저기서 문을 활짝 열고 날 기다리고 서 있는데 그걸 뻔히 알면서 다른 문을 향해 달려가려는 나를 보는 그 괴로움이란! “그쪽으로 가면 안 된다!” 아이에게 할 말이 아니라 제가 하루에도 스스로에게 수없이 해야 할 말이라는 것을 이 구절을 읽으며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예수님, 돌아서면 바로 까먹는 신기한 능력을 가진 저이지만 절대로 ‘오직 하나의 의미’ 만큼은 잊지 않게 해주세요. 하느님을 닮아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 제 안에, 그리고 우리 모두 안에 있다는 것을요.”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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