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는 복음 – 우리는 서로의 보호자

윤성희

우리는 서로의 보호자

5/25 부활 제6주일 / 요한 14,15-21

고등학생 때 남자고등학교의 축제에 간 적이 있었다. 그 축제에 초대해 준 사람은 밴드부에서 드럼을 치는 친구였다. 그 학교의 축제는 근처 여고의 화제였다. 선배 연예인들이 함께 하는 공연을 보고, 잘생기고 멋진 오빠들을 원 없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친구는 당시 유행하던 노래들을 연주하며 오빠 부대들의 환호성을 한 몸에 받았다. 저렇게 멋진 녀석이 내 친구라니! 내 어깨가 으쓱해졌었다. 그러나 수많은 세월을 건너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안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언젠가 그 친구가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뿐이었다. 어른이 돼서도 나는 그 친구가 궁금했다. 청재킷을 입고 앞머리를 옆으로 쓸어 올리던 녀석, 드럼 스틱을 두드리며 혼신을 다했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안부가 궁금했고 만나고 싶었다.

모교 온라인 모임에서 그를 만난 건 얼마 전이었다. 회원 명단에 이름이 있어 혹시나 했는데 그 친구였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눴고, 친구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추억 보따리들을 풀어 놓았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마니또를 주최하며 그 친구가 좋아하는 여자 친구와 연결해 주려고 노력을 했다는 것을 친구덕분에 알게 됐다. 친구는 나로 인해 아름다운 추억이 많다며 무척 고마워했다. 그날부터 하루하루가 ‘추억 찾기’였다. 잊고 지낸 많은 추억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우리는 연락을 주고받으며 약속했다. 곧 만나기로. 세월의 먼지들을 털어내며 함께 지난 이야기들을 나누기로. 그러나… 나는 끝내 그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

올해 들어 다섯 번째 부고였다. 친한 친구의 동생이 실종된 지 두 달 만에 주검으로 발견이 되었고, 그 다음 날 뇌종양으로 투병하던 선배가 떠났다. 함께 공부하던 선생님의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셨고, 아이 친구의 아빠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리고 잠들어 있던 내 추억들을 모두 깨워놓았던 그 친구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믿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오늘이 만우절이라면, 못된 거짓말이라고 부고 소식을 전한 친구를 혼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곧 만나자던 친구는 영정 사진 속에서 환히 웃고 있었다.

내 삶을 흔들어 놓는 수많은 죽음에 나는 무척 괴로웠다. 수 년 전부터 이해할 수 없는 죽음들이 잇따랐고, 그로인해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며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어 괴로웠다. 그 즈음에도 그랬다. 갑작스럽고 비참하게 동생을 잃은 친구의 고통을 어찌해줄 수 없는 내 자신을 원망하고 있었다. 힘들다고 울면서 전화하는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기껏 ‘힘내’라는 말 밖에 없어서 괴롭고 또 괴로웠다. 하느님도 원망스러웠다. 삶 자체를 지옥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 분이 미웠다. 도대체 왜 유독 나에게만 이런 힘겨운 일들을 주는지 이해 할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악하게 살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힘이 되려고 애쓰며 살았는데 왜 이런 고통을 주시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며칠 후 SNS 쪽지와 손 편지가 왔다. 나의 괴로움을 읽은 지인들이 그들의 아픈 경험을 들려주며 힘내라고 위로를 해주었다. 그들의 마음을 읽으며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보호자라는 걸. 정말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고아로 내버려 두시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한 친구를 보내고 다른 친구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서로의 마음을 다독일 때부터 알아 봤어야 했다. 견디기 힘든 현실에 휘청거리는 나를 위로하던 사람들을 보며 깨달았어야 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보호자라는 걸. 서로에게 특별하게 무언가를 해줄 수 없고, 그들을 진짜로 보호해 줄 수 없다고 해도 ‘보호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도록, 여기 이 자리에 서로가 존재하고 있는 것, 그래서 서로가 서로의 보호자로 존재하는 것이 우리 삶의 의미임을 말이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그 분의 계명을 지키며, 삶의 끈을 놓아버리려는 사람들에게 편지 하나,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며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게 하는 것이 내 삶의 의미임을.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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