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오늘 사제는무엇으로 사는가? – 소희숙

소희숙

순례자의 일용한 양식

송구스럽다. 나 자신도 수도자의 신분에 걸맞게 살지 못하는 주제에 성직자인 사제에 대하여 운운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나는 한 인간이 사제가 되기 위하여 어떤 교육과 수련을 쌓는지 모른다. 대신학교에 입학해서 일정기간 공부와 수련을 쌓으며 성소에 충실하고, ‘사제로서 합당하다’ 는 판단을 받으면 사제로 성품 될 것이라고 짐작만 한다. 그 모든 과정에 하느님의 손길이 있음은 확신한다.

사제는 무엇으로 사는가? 사는 게 별건가? 사제는 특별한 신분인가? 도토리 키 재기 아닌가? 일단, 나는 사제신분의 어떤 점이 일반신도와 다른지 잘 모르겠다.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 안에서 일생을 살며,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그분을 닮은 이 시대의 사제직, 왕직, 예언직 수행자라는 점에서는 사제와 세례성사를 받은 일반신도와 다를 바 없다. 누구나 “예수를 주님이시라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는 사람들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고 (로마서 10,9-10), 선택된 민족, 왕의 사제들, 거룩한 겨레,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하느님의 자비를 받고 구원 받은 자들이 된다.” (1베드로 2,9-19) 일반신도들도 하느님께 봉헌된 사람으로서 일생동안, 맡은 바 직책수행을 위하여 목숨까지 바치는 이 시대의 ‘작은 예수’ 가 되어야 한다는 점도 사제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는 않다.

구약의 에제키엘서 34장을 보면 좋은 목자와 악한 목자가 있다. 악한 목자도 처음부터 악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느님께서는 폭력과 강압으로 다스리는 (34,4) 악한 목자들에게서, 맡겼던 당신의 양들을 ―목자의 양이 아니다― 구하여 직접 보살피겠다고 선언하신다. “잃어버린 양은 찾아내고 흩어진 양은 도로 데려오며, 부러진 양은 싸매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북돋아 주겠다. 그러나 기름지고 힘센 양은 없애버리겠다. 나는 이렇게 공정으로 양떼를 먹이겠다(34,16)” 고. 결국 악한 목자도 양 무리 중 하나에 불과하고 좋은 목자는 하느님의 다스림과 같이하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예수의 공생활 첫 출발은 하느님 나라의 선포였다. 그분은 자신의 가르침을 실현하고 사람 사는 이 땅위에 사랑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평화의 하느님 나라를 세우고자 목숨까지 바친 사회개혁자시다. 그 분은 하느님 나라에 반하는 모든 세력과, 전통을 하느님보다 위에 놓고 율법으로 서민을 묶어놓은 위선자들을 무섭게 질타하시며, 가난과 질병, 부정부패의 기득권자 (=성직계급) 들에게 착취당하는 약자들을 찾아 이 마을 저 마을로 찾아다니시며 그들 한 가운데에 그들과 함께 계셨던, 길 위의 순례자시다. 그렇게 살면 마침내 그렇게 죽을 것을 알면서도 하느님께 받은 소명과 사명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셨던 예수 (루카 13,33). 그렇게 십자가 죽음으로 사명을 다 마치신 예수께 대한 하느님의 보답은 부활, 영원한 생명, 하느님 자신이었다.

사제는 어떤 신분의 소유자일까? 사제의 신분은, ‘지금 이 자리에서 하고 있는 행실로써 그의 신분의 특성을 증명해 나가야하는 순례자’ 이며, 더불어 ‘참된 순례자’ 임을 하느님과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인정받아야 하는 신분이라고나 할까? 사제의 신분은 한 번의 성품성사로 확정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그 신분의 특성을 행실로서 인정받아야 되는, 어렵고 피곤한 신분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사제는 늘 긴장하고 깨어있어야 하며 (마르코 13,33), 매일 기도로서 자신을 하느님으로 충전해야하는 사람들이다. 예수와 같이 사제는 이렇게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가기로 결정하고, 자발적으로 하느님께 서약한 것을 교회가 인정하고 일반에게 공표한 공인들이다. 그래서 일반신도들은 그 어려운 길을 가는 사제를 축복해주고, 오로지 그 길로만 정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뒷받침해준다. ‘이 시대의 작은 예수가 되어 주십사’ 하고.

사제는 무엇으로 사는가? 일단 먹어야 산다. 사제의 일용할 양식은 무엇인가? “나의 양식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 이라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제들의 양식이다. 풀어 말하면 섬기는 사람, 모든 이의 종으로서 목숨까지 내주는 (마르코 10,44-45) 착한 목자,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며 모범을 손수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가 사제들의 양식이다. 그가 받은바 사명을 충실히 행하는 일꾼일 때,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기뻐하시는 대리자임을 인정하시고 백성들이 인정할 때, 그는 비로소 하느님의 참 대리자, 착한 목자로서의 사제가 되는 것이다. 일반신도와 구별되는 사제신분이 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대신하여 당신의 백성을 돌볼 일꾼으로 뽑은 사제, 그는 엄밀히 말하면 하느님이 품삯을 주는 삯꾼이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참된 대리자로 인정할 수도 있고 그를 내칠 수도 있다 (에제키엘 34장). 사제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사명 ―이 시대의 작은 예수― 을 다 마치는 날 (요한 19,30), 영원한 생명, 하느님 자신이 보수로 주어질 것이다. 사제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예수그리스도로 산다. 사제들은 예수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예수를 먹고 예수화 되어 그의 대리자 ―결코 주인이 아니다― 역할을 수행하여야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 신분의 사람이다. 누구나 자기 신분에 걸맞게 살아야한다. 나도 초심으로 돌아가야겠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 내 양식이다.” (요한 4:32)

소개: 서울포교성베네딕도수녀회 소희숙 수녀. 나이 먹으니 좋은 건 시간을 낼 수 있다는 것! 뒤늦게 사회문제에 눈을 뜬 노인초보활동가. ‘그것이 옳은 일이고 하느님께서 좋아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면 일단, 저지르고 보자’ 는 용감한 돈키호테.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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