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돋보기- 세월호 참사와 종교의 역할

황경훈(아시아평화연대센터장)

세월호 참사와 종교의 역할

세월호 참사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스무 명의 아이들이 물에 잠겨 있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할 말을 잃은 채 그 말을 안으로만 곱씹으며 처절한 반성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반성이 분노의 소리가 되어 돌아오고 있는 듯하다. 5대 종단 평신도들은 희생자 추모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합동 기도회를 열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기도회가 열린 5월 10일 당일자로 “미안함과 분노를 넘어 행동으로”라는 매우 동적인 제목으로 기도회 소식을 기사에 담았다. 이번 호에서는 5대 종단 평신도들의 기도회를 박근혜 대통령이 연 종교지도자들과의 초청간담회와 비교하면서, 세월호 대참사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정치권력과 종교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미안함과 분노를 넘어 행동으로

 

5대 종단 평신도 청계광장서 기도회아이들을 살려내라한 목소리로 기도

한수진 기자

“미안하다. 분노한다. 일어서자.” 서로 다른 신앙을 가진 5대 종단 (천주교, 개신교, 불교, 원불교, 천도교) 평신도들이 노란 리본 물결 속에서 한 목소리로 호소했다. 5대 종단 평신도 시국공동행동 (이하 평신도 공동행동) 은 10일 오후 5시 서울 청계광장에서 연합시국기도회를 개최했다. 평신도 공동행동은 이날 기도회에서 공동기도문을 발표하고 정부와 야당에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또한 세월호 참사와 불법 부정선거의 책임을 지고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발언대에 오른 박성희 가톨릭평화공동체 사무국장은 “여기저기서 질러대는 함성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냉정하게 행동하고 끝까지 투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 사무국장은 “이 나라가 돈만 아는 지옥이지만, 그래도 세월호 희생자들을 여기서 좀 더 살 수 있게 두신 다음에 천국으로 데려가셔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간절한 마음을 전했다. 박현공 원불교 교무는 “세월호 사고와 박근혜 정부의 무능으로 수백 명이 멀쩡히 살아있는 채로 수장된 것은 우리가 믿는 하느님, 부처님, 하늘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다. 때문에 우리 모두가 유족”이라고 말했다. 또한 박 교무는 지난 2일 청와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과 종교지도자 간담회를 언급하며 “종교가 권력과 손잡거나 정교분리 프레임에 빠진다면, 종교는 신앙의 이름으로 신앙인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기도회에는 5개 종단 신자와 시민 1천여 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아이들을 살려내라”,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박근혜가 책임져라”라고 쓰인 하얀색 종이 피켓을 들고 간절함과 분노를 표현했다. 기도회에 참가한 청소년 최유주 양은 “정부가 정식으로 잘못을 사과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 양은 “지금처럼 하려면 차라리 사퇴를 하라”고 덧붙였다.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과 같은 고등학교 2학년인 최 양은 “97년생들이 무슨 잘못을 했나.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같은 나이 친구인 것만으로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하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

기도회 참가자 중에는 자녀와 동행한 부모들도 많았다.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나온 유용열 씨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반성하기 위해” 기도회에 참석했다. 천주교 신자인 유 씨는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세상의 모습이 바뀔 거라고 말씀하셨지만, 여전히 그대로인 것 같다. 다시 한 번 하느님께서 이 땅에 모습을 보여주셨으면 하는 믿음 뿐”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자 추모와 진상규명 요구를 위한 종교인들의 행동은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5대 종단 평신도 시국공동행동은 조만간 향후 계획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천주교 평신도 단체인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은 매주 월요일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미사와 기도회를 개최하고 있다. 오는 12일 오후 8시 서울 대한문 앞에서 기도회와 거리 강연이 열린다. (전문)

대통령의 사과와 종교지도자 초청간담회

박근혜 대통령이 종교지도자 10명을 지난 5월 2일 청와대로 초청해 간담회를 했다. 지난해 3월 취임 직후 초청 간담회에 이어 두 번째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국민들께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대안 등을 말씀드리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 며 ‘대국민 담화’ 형식으로 사과를 하겠다는 의도를 ‘흘렸다’. 대통령은 왜 갑자기 종교인들을 불러 도움을 청하며 이런 말을 했을까.

세월호가 침몰한 지 14일째인 지난 4월 29일 국무회의에서 “이번 사고로 많은 고귀한 생명을 잃게 돼 국민 여러분께 죄송스럽고 초동 대응과 수습이 미흡했던 데 대해 뭐라 사죄를 드려야” 하는지 모른다며 사과했다. 이 첫 사과 직후 청와대 대변인은 “어느 정도 수습되고 재발방지책이 마련되면 대국민 입장 발표가 있을 것” 이라고 했다. 그러나 실종자 가족과 시민사회는 국무회의가 아니라 ‘국민에게 직접 사과하라’ 며 사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다음 날인 4월 30일 안성 합동분향소에서 피해자 가족이 아닌 일반 참배객과 ‘위로 연출’ 을 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때 아닌 종교지도자 초청간담회가 이루어진 것은 이런 배경 아래서다.

그런데 초청간담회에서는 이런 사과를 전제하고 종교인의 도움을 요청한 것만이 아니다. 대통령은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유언비어와 확인되지 않은 말들이 퍼짐으로써 국민과 실종자 가족에게 더 큰 마음의 상처를 주고 사회에 혼란을 일으키게 돼 정말 가슴 아픈 일”이라며 “이런 일은 국민이나 국가 어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로서도 더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고 말했다. 이 말에서는 유언비어의 원인이 자신이 아니라 다른 데에 있으며, ‘쓸 데 없는 말은 더 이상 하지 말라’ 는 공세적 태도가 읽힌다. 종교지도자들은 굳이 왜 이런 ‘혼’을 내는 자리에 멍석을 깔아줬는지 알 길이 없다.

종교자정과 쇄신은 정치권력과의 고리를 끊는 데서 시작해야

석가탄신일인 5월 6일 법요식에 참석한 것을 포함해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냄새 풍기기’ 시리즈는 계속된다. 마치 대국민 담화를 통해 직접 사과를 하면 피해자 가족과 국민들이 다 이해하고 받아주고 끝나야 하는 분위기로 몰고 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수많은 시민사회 단체와 심지어 고등학생까지 도로로 뛰쳐나와 “박근혜가 책임져라” 를 외치고 있다. 또 5월 10일 5대 종단 평신도들의 시국기도회의 메인 이슈요 주요 구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박근혜가 책임져라” 였다. 이는 대국민 직접 사과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시작이지 끝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과의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서는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를 명확히 밝히고 책임자를 반드시 규명하여야 하며, 그 과정에서 최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 드러나면 마땅히 사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세월호 전에 시민사회에서 선거부정의 책임을 물어 사퇴를 요구해 온 마당이 아니던가. 더 이상 추한 모습 보이지 않는 것이 국민과 나라를 위하는 현명한 길로 보인다.

그런 대통령이 부르자 너나없이 달려간 종교대표자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런 상황에서라면 초청을 거부하는 것이 종교의 예언자적 진면목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종교 어디에서도 종교지도자들의 이런 모습에 대한 반성이나 비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음은 한국 종교 전반에 걸쳐 자정과 쇄신이 절실하고도 급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기사에서 원불교 교무는 종교지도자 간담회를 언급하면서 “종교가 권력과 손잡거나 정교분리 프레임에 빠진다면, 종교는 신앙의 이름으로 신앙인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 이라고 일갈했다. 종교지도자 간담회와 관련해 대중매체를 통해 종교 내부에서 나온 첫 반성이자 비판의 목소리인 점에서 환영하고 고맙게까지 느껴진다. 세월호 참사가 상징적으로 보여주듯, 종교가 탐욕과 부패로 얼룩진 권력의 검은 고리 가운데 하나이거나, 그렇게 되고자 한다면 현 정권이 국민의 분노와 저항에 직면한 것 같은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에서 종교지도자들은 우선 왜 여러 종단 평신도들이 한 데 모여 공동 집회를 열었고 무엇을 주장했는지 귀 기울여야 한다. 종교가 맑고 투명하면 자연스럽게 정치권력에서 멀어지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의식적으로라도 정치권력이 아니라 끊임없이 저 바닥의, 고통의 현장에 있는 이들과 함께 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종교의 의미가 밝히 드러나 새삼스럽지만 다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여기다시 보기

《가톨릭뉴스 지금여기》기사 길이가 대체로 길다는 지적이 이 기사에 제대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종교인과 다른 참가자들의 코멘트도 적절해 보인다. 종교간 연합이나 공동주최로 이뤄지는 행사 취재에서 흔히 종교지 기자가 빠지기 쉬운 ‘유혹’ 가운데 하나는 자기 종교와 관련된 이들의 발언이나 주장을 맨 앞에 둔다는 것이다. 이는 종교 기사가 아닌 경우 마지막에 해당 종교인을 인터뷰해 코멘트 한 줄 받는 것으로 ‘종교 기사’로 세례를 받게 하는 것과 비슷한 유혹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기사에서 가톨릭평화공동체 사무국장이 “이 나라가 돈만 아는 지옥이지만, 그래도 세월호 희생자들을 여기서 좀 더 살 수 있게 두신 다음에 천국으로 데려가셔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한 말을 리드에 가깝게 배치한 것을 놓고 볼 때, 집회의 핵심적 주제의 원근보다는 앞서 말한 그런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기사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성직자와 평신도의 행보가 어떻게 다른지를 한 참가자를 통해 보여주었다. 정치권력과 종교의 밀월은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지만, 기회가 닿는 대로 이런 기사의 소재를 발굴하고 기사를 써내는 것도 종교개혁과 자정에 ‘약’이 되리라 믿는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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