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사회운동 다시 보기 – 평신도 사회운동, 대안을 원하면 태도부터 바꿔보자!

경동현(우리신학연구소소장)

평신도 사회운동, 대안을 원하면 태도부터 바꿔보자!

세월호 그리고 착한 목자

세월호가 가라앉은 지 거의 한 달이 지났다. 처음 몇 일간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희망의 시간이 지나고 점차 끝 모를 깊은 애도와 분노의 시간을 지나 뭔가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높아가고 있다. 이번 참사에서 우리는 국가의 녹을 먹는 이들이 도무지 끝이 없는 부패와 무능, 그리고 탐욕덩어리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겉으로는 조속한 사고수습과 진상규명을 말하지만 세월호 사건이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출구 전략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셈하는데 있어서는 여야가 없는듯하다. 한편으로는 세월호 사건이 우리 교회를 심판하는 잣대라고 말하는 이야기도 들린다. 교회가 참 예언자인지, 거짓 예언자인지, 예수님의 참 제자인지 거짓 제자인지를 심판하는 잣대 말이다.

지난 5월 12일 대한문 앞에서 정의·평화·민주가톨릭행동 주최로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거리 기도회가 열렸다. 이날 기도회에는 사고 희생자인 단원고 2학년 이승현군의 아버지도 참석했다. 그는 “여러분들도 동영상을 봐서 알겠지만 사고 직후 아이들은 전원 생존해있었다”며 “아이들이 발버둥치고 아우성칠 때 팽목항에는 구경꾼만 있었다. 언론도 구경을 했고, 그때는 하느님도 부처님도 구경했다”고 말했다.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자식과 생이별을 해야 했던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대목에선 참석자 모두가 울었다.

이날 기도회의 복음 내용은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착한 목자에 관한 요한복음의 말씀이었다. 목자를 배의 선장에 비유한다면 세월호 사건에서 우리는 삯꾼인 목자인 대통령, 관료, 선장과 승무원들을 목격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어떤 목자를 갖고 있을까? 삯꾼인 목자를 만난 양떼가 어찌되는가를 우리는 교회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어떤 목자냐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신자들의 본당 생활은 이제 일상이 됐다. 좀 다른 질문도 가능하겠다. 평신도는 늘 양떼여야만 할까? 한국천주교회는 평신도가 스스로 세운 교회라는 점을 자랑삼아 말한다. 혹자는 이를 목자 없는 교회라고 규정하면서 목자가 없는데도 교회를 세웠기 때문에 자랑이라고 말한다. 목자 없이 세운 교회라서 자랑이 아니라, 늘 양떼라는 자의식을 갖고 있는 평신도들이 스스로 목자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자랑이 아닐까?

우리가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고, 남들도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우리가 영원한 목자이신 예수그리스도처럼 살기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목자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양떼의 삶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가정에서, 직장에서, 세상 안에서 평신도들이 스스로 목자의 삶을 살도록 초대하는 것이 착한 목자를 말하는 복음의 메시지다.

과거의 기억에서 미래의 대안을 찾다

지난 4월 마지막 주, 1980년대 중후반 전국에서 가톨릭학생운동에 참여했던 40대 예닐곱 명이 모여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오는 11월 한국가톨릭대학생운동 60주년을 맞아 과거의 기억들을 정리하고 침체된 현재 가톨릭대학생회 후배들에게 대안이 될 만한 이야기들을 정리해보자는 취지였다. 대화는 크게 신앙이냐 운동이냐의 경계에서 선배들이 생각한 가톨릭대학생회의 정체성은 무엇이었고, 현재 재학생 후배들에게 선배들의 갈등과 고민은 무엇이었는지를 들려주자는 것이었다. 간담회에서 나왔던 이야기를 잠깐 들어보자.

안○○(85학번) : 84년에 학원자유화 바람이 불면서 학교마다 총학생회가 부활하고 가톨릭학생회(이하 ‘가생’)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영성과 삶이 다른 게 아닌데, 어떤 선배는 가생은 기도만해야 한다고 했고, 어떤 선배는 기도하는 꼴만 보면 하라는 데모는 안하고 기도만 한다며 서로 극단적으로 다퉜던 시기였다. 학원자유화 조치 이후 선배들 권위가 통하지 않는 분위기가 높아가고, 기도만 강조하는 선배들을 후배들이 선배 취급 안하는 분위기가 늘어가면서 소위 기도그룹들은 가생에서 설자리를 잃어갔다.

이○○(87학번) : 그 이후에도 기도냐, 운동이냐의 논란은 계속됐는데 이 혼란은 ‘가톨릭학생운동’으로 정리됐다. 학생이라는 정체성과 가톨릭 신자의 정체성을 놓치지 말고 신앙 안에서 성서를 중심으로 다시 해석을 하자는 거였다. 성서안의 하느님나라운동사는 그렇게 태어났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나 관심은 80년대 초반이전에도 있었지만 그 선배님들과 우리는 좀 달랐던 거 같다. 선배님들은 주로 외국서적을 번역하거나 소개하는 이론적 차원의 접근이었다면 87년 이후는 운동을 해야 하는데 나의 정체성은 무엇이냐. 접근법이 완전히 달랐다. 대부분의 가생이 운동하는 곳으로 통일되면서 기도그룹들이 설자리가 없어졌는데 지나고 보니 ‘청년성서모임’같은 곳으로 쏠려 버린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가생 내부에서 활동의 근거를 찾기 위한 이러한 노력들이 깊어가는 한편으로 교회의 지도단은 정부와 긴장, 갈등을 만들어가는 ‘가생’ 이 눈엣가시였다. 72년 이후 87년까지 15년 사이에 주교회의는 3차례에 걸쳐 전국조직 해체 결정을 내렸고, 이와 별도로 2차례의 전국조직이 스스로 무너진 경험을 하게 된다. 현재는 무너진 전국가생 조직을 다시 복원하기 위한 준비 단계라 할 수 있다. 간담회에 참석한 동문들은 교도권의 해체 결정이 큰 역할을 하긴 했지만 변화하는 흐름에 가생운동의 주체인 학생들과 그 선배들이 주도적으로 반응하지 못한 점을 가생운동 침체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았다.

밀양 송전탑 대책위의 이계삼 사무국장은 세월호와 관련해 실은 신문의 한 칼럼 (“잠시 멈춰서자” 한겨레 5월8일)에서 이렇게 말한다. “밀양 송전탑 싸움을 통해 내가 얻은 가장 큰 학습은 정치공간이 ‘허당’이 되어버릴 때, 국가와 시민이 직접 부딪칠 때 재난이 도래한다는 사실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이며, 그 정치는 저들을 향한 청원이 아니라 우리들 스스로를 엮어 세우는 방향으로 귀결되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나는 배웠다.” 그의 글에서 ‘정치 공간’, ‘정치’를 ‘교도권’, ‘교회’로 바꿔놓고 보니 평신도 운동을 도모하는 이들에게 큰 힘이 되는 말이 되었다.

세상을 건강하게 바꾸어내는 이른바 운동을 논할 때 흔히 대안이 없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더구나 교도권의 처분에 익숙한 한국교회에서의 평신도 운동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주교님들의 해체 결정에, 본당 사제의 독단에 열심히 분을 내다가도 결국 막막해 하고, 좌절해 교회를 떠나거나 소수의 운동으로 자꾸만 작아지는 악순환이 거듭돼 왔다. 그런데 ‘대안이 없다’는 말은 과연 대안이 있는가 없는가에 관한 말일까? 그것은 오히려 대안에 대한 태도에 관한 말이다. ‘대안이 없다’는 말엔 대안에 대한 피동적 태도, 대안이 이미 차려진 혹은 남이 차려주는 메뉴에서 고르는 것이라는 태도가 담겨있다. 목자의 처분을 바라는 양떼의 태도에서 대안은 없다. 그래서 대안은 ‘아직 차려지지 않은 것’이며, 평신도들의 주체적 참여와 행동으로부터 차려지는 것이다. 그래서 대안을 원한다면, 대안에 대한 태도부터 전환해야 한다.

“평신도 사회운동 다시보기”는 이번호를 끝으로 마무리합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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