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인물 열전 – ‘가난한 이’를 선물로 여긴 선우경식의 영성(3) – 낮은 곳에 머무른 영혼의 의사

박문수

‘가난한 이’를 선물로 여긴 선우경식의 영성(3)

낮은 곳에 머무른 영혼의 의사

선우 선생은 평생 신앙의 끈을 놓진 않았지만 교회와는 거리를 두고 살았다. 교회가 제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선생과 만났던 수도자, 평신도들의 증언에 따르면 교회가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거대한 병원들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가난한 이들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을 자주 하였다고 한다. 아마 이런 서운함이 그의 병을 더 키웠을지 모르겠다.

섭리 체험

선생이 요셉의원을 시작하자 뜻을 같이 하는 의사, 약사, 간호사, 봉사자들이 모여들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선생이 떠난 지금까지도 요셉 의원을 지키고 있다.

개원 초기에 재정 조달은 최대 난제였다. 의료장비, 약품 등은 후원을 통해 일부 필요한 양을 맞출 수 있었지만 밀려드는 환자들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제약회사에 외상도 하고, 사정도 해서 비용 지불을 미루고 간신히 버텨내는 날들이 많았다. 초기 3년 동안 이런 일들이 계속되자 선생은 급기야 문을 닫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 막다른 길에서 선생은 놀라운 섭리체험들을 하게 된다. 이 체험들이 그를 평생 이 일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착한 이웃』2007년 9월호 (44호)에 실린 선우경식 선생의 다음 고백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겠구나’ 하고 주저 앉아있을 무렵에는 어김없이 후원자가 나타나 깜짝 깜짝 놀라곤 했다. 너무 절묘해서 가슴이 섬뜩할 만큼 보이지 않는 힘을 느끼곤 했다. 차츰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어렴풋이 ‘하느님의 손길이 우리를 도와주고 계시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하느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찌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게 되었다. 처음에는 우리 힘으로 하는 거라 생각했었는데 차츰 하느님 사업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느님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이후 재정난이 말끔히 해소된 건 아니었다. 차츰 해소되긴 했지만 재정난은 남은 시간 내내 선생을 괴롭혔다. 재정난이 완전히 해소된 때는 역설적이게도 선생이 하늘나라로 떠나고 난 뒤였다. 그동안은 정성이 부족해서였을까, 선생의 진심은 개원 이십년이 되어서야 교회와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선생이 바라는 바는 아니었을 테지만 개원 이십 주년을 전후로 이곳저곳에서 선생에게 상을 주기 시작했다. 이 소식이 신문과 방송을 타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사건은 선생이 소천하고 나서 일대기를 담은 다큐가 방송을 타게 된 일이었다. 이 일 이후로 생전에 그토록 선생을 괴롭혔던 재정 문제가 해결되었다. 선생의 진심에 감동한 이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었던 까닭이다.

가난한 이를 선물로 여김

요셉의원에서 일하는 상근 봉사자 가운데는 과거 선생이 살아 계실 때 환자출신이었던 이들이 몇 명 있다. 이들은 알코올 중독자로 노숙생활을 하였던 경우인데 선생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였다. 이들이 회상하는 선생의 모습을 보면 선생은 환자들에게 예수님이었다. 그들이 회상하는 선생의 모습이다.

“선생은 환자가 오면 제일 먼저 목욕을 시킨 다음 새 옷을 갈아 입혔다. 그 다음에는 배불리 먹였다. 그렇게 한숨을 돌리게 하고 난 뒤에야 환자들을 진료했는데 진료라기보다는 상담에 가까웠다. 선생은 오랫동안 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 다음 상태를 보아 체력이 떨어진 환자들은 병원에서 마련한 숙소에 며칠 씩 머물게 했다. 약이 듣게 하기 위해 몸을 추슬러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선생은 이 일을 직접 했다. 직접 환자를 데리고 다니면서 일일이 다 챙겼다. 술에 취해 행패를 부려도 선생은 다 받아냈다. 그들이 이 세상 어디서 소리를 지를 수 있었겠느냐고. 맘껏 소리 지르고 화낼 수 있게 놔두라 했다.”

요셉의원을 찾았던 환자들이 기억하는 선생은 육신의 의사가 아니라 영혼의 의사였다. 환자들은 선생에게 의료적 진단과 처방도 받았지만 비로소 사람대접도 받았다. 그들을 인격으로 대하는 선생에게서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 받은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응어리 진 한을 선생에게서 풀고 육신과 영혼의 치료를 받았다.

늘 도망가고 싶었으나…….

선생은 나와 똑같은 면도 가지셨다. 선생은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이 잔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하던 예수님처럼 도망가고 싶어 했다. 남들은 선생이 개원 후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제 자리를 지켰을 것이라 생각하거나 믿을 터이다. 그는 남들이 칭송하는 영웅이었으니까. 아니, 영웅이 되어야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선생은 그런 영웅의 모습이 아니었다. 선생은 환자들이 쉴 새 없이 밀려오자 다리가 부러지거나 아파서 병원을 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병원에 가 환자들의 눈을 마주하면 이내 그 마음이 달아났다. 섭리 체험을 통해 이 일이 하느님의 일임을 알았음에도 여전히 그는 도망가고 싶어 했다. 얼마나 인간적인가?

마치며

선생은 독신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터이다. 그럴 수 있다. 나도 어떤 때는 혼자 살았어야 했나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으니까. 그러나 혼자 산다고 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혼자 사는 사제, 수도자 대부분도 이렇게 안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투신의 조건이 독신일 수는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결국 마음의 문제이다.

선생에게 가난한 이는 예수님의 모습으로 다가와 평생 그와 함께 머물렀다. 선생은 그렇게 찾아 온 이를 예수님으로 모셨다. 가난한 이들의 몸을 선물로 받아 들였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그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럼에도 이 일이 쉽지는 않았다. 선생의 몸은 항상 가난한 이들과 함께 있었지만 마음은 늘 도망을 다녔던 까닭이다. 무슨 영웅이 이런가 싶겠지만 바로 내겐 이러한 면이 선생을 더 존경하는 이유가 된다. 많은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나와 같은 처지였는데도 그리 영웅적인 일을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니까…….

선생은 운영난 때문에 늘 안정을 바라면서도 교회에 소속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자칫 선교 목적이 앞서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비굴하게 만들거나, 물질적 안정이 찾아와 섭리 신앙을 잃을까 두려웠기 때문일 터이다.

선생이 가난한 이들을 예수님으로 받아들인 이 사건에는 깊은 뜻이 들어 있다. 깊은 계곡이 모든 것을 품듯 가장 낮은 자리에 머물 수 있을 때 모든 이를 섬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려 하신 것이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라야 모든 이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으니까.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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