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는 복음 – 영원히 산다는 것은

윤성희

영원히 산다는 것은

6월 22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 요한 6,51-58

음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숫자’로 지켜보던 아이들의 수많은 영정사진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한 번은 가야지, 가서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그들을 잊지 않겠다고 약속해야지’ 다짐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검은 옷을 입고 안산으로 향했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그 또래의 아이들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사람으로서, 가만히 앉아서 울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합동 분향소에 들어서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수많은 아이들의 얼굴에 기가 막혔다. 헌화를 하고 묵념을 하며 내내 울었다. 함께 조의를 표하던 많은 사람들이 숨죽여 울었다. 아이들의 영정을 돌아보며 어떻게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죽을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많은 아이들이 죽어갈 때 예수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단 말인가.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 그 분은 도대체 어디에 계셨는가 말이다. 간절히 기도했었다. 모세가 홍해를 갈라 길을 만들었던 것처럼 그렇게 바다가 갈라지고 길이 생기기를,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물 위를 걸어오라’고 하신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걸어오라’고 하시기를, 아니 그것도 안 된다면 적어도 몇 명이라도 기적처럼 살아서 돌아오기를.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영정 속의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예쁘고 아름다웠다. 그 또래만이 갖고 있는 찬란함이 있었다. 그 눈부신 아이들이 지상의 아이들이 아니라는 현실이 비참하고 처참했다.

분향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세상이 유난히 찬란해 보였다. 분향소 안의 깊은 슬픔과 너무나 대조된 바깥 풍경에 마음이 우울했다. 감정을 추슬러보려고 조금 걸었다. 그러다 평상처럼 생긴 의자에 앉았다. 등 뒤로 두 분이 앉아 계셨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가 싶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 있는데 그 분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그쪽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것은 ‘말’이 아니라 ‘대화’였다.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 그 분들은 연도를 바치고 계셨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하느님을 원망하기만 했지 연도를 바칠 생각을 하지 못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성호를 긋고 함께 연도를 바쳤다. 나의 기도로 그들이 하늘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을 수 있기를, 그 아이들이 평안할 수 있기를, 자식을 앞세운 부모들이 힘을 낼 수 있기를 바랐다.

연도를 마치고 조용히 일어나 길을 걸었다. ‘미사와 연도 장소’가 안내된 표지판이 보였다. 처음부터 제대로 연도를 바치고 싶어서 야외 음악홀로 갔다. 그러나 미사와 연도는 저녁 시간으로 옮겨져 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발길을 돌리는데 음악 홀 주변을 기웃거리고 있는 분들이 보였다. 그들은 ‘미사와 연도’가 안내된 표지판을 따라 여기까지 오신 듯 했다. 삼삼오오 모여드는 그 분들을 보면서 나는 울컥했다. 아이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서 기도하려는 그들이야말로 ‘영원한 생명’을 나누려는 사람들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영원한 생명’이 그리스도를 믿는 ‘개인’의 생명이라고 생각했다. 예수님을 믿으면 ‘내’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 한 사람의 생명이 아니었다.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은 혼자의 힘으로는 얻을 수도 없고, 아무리 ‘살아있는 빵’을 먹는다 할지라도 그 빵을 나눌 줄 아는 마음이 없다면 ‘영원한 생명’이란 그저 성경 속에 박제된 문자로만 존재할 뿐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분을 보았다. 아기를 업고 분향소 버스를 기다리던 아기엄마와 교복을 입고 노란 리본을 메던 학생들, 그리고 어깨를 들썩이며 숨죽여 울던 아저씨와 연도를 바치려 모여들던 사람들 사이에 함께 계시던 예수님을.

† 주여!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난 이들이 ‘희생자’가 아닌 이 나라를 바로 세우는 주춧돌이 될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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