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프란치스코 교황을 맞는 한국천주교회의 자세 – 경동현

경동현(우리 신학 연구소 소장)

교황 방한과 한국천주교회의 풍경

풍경1 8월 방한에 대한 기대와 우려

진보적 평신도단체인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과 ‘정의‧평화‧민주가톨릭행동’은 지난 3월 교황 방한이 확정된 직후 교황의 방한 결정을 환영하는 한편으로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교회 장상들을 향해서도 교황 방한이 한반도에 “복음의 기쁨”을 드러내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시민사회와 교회 각 지체의 다양한 열망을 수렴할 통로를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고, 방한이 단순한 이벤트를 넘어 사회와 교회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력한 미국의 가톨릭 매체인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이하 NCR)》는 지난 6월 5일자 기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일정과 각종 추문을 불러왔던 꽃동네 등의 방문 장소가 과연 교황이 즉위 1년간 강조해온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교회의 모습에 부합하는가에 대한 논란을 전했다.《NCR》은 교황의 방한이 오랜 기간 곪아온 교회와 정부 간의 불화, 심지어는 한국천주교 내부의 일부 갈등을 드러내면서 논쟁이 시작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논란은 방한 일정이 조정되기를 바라는 기대를 담고 평신도 단체들의 기자회견과 청원운동으로, 작은예수회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꽃동네 방문 반대운동으로, 사제단 신부들의 언론 기고문 등을 통해 꾸준히 제기됐으나 6월 18일 교황방한준비위원회와 교황청의 공식 방한 일정발표에 큰 변화를 주지는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풍경2 교황 방한, 30년 전과 오늘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있기 전까지 국가 기관의 대통령선거 개입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교황 방한의 또 다른 주인공인 대통령이 대다수 사제와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들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고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교황 방한이 교회엔 양적 재도약의 기회로, 정권에겐 부정 선거 논란과 세월호 진상규명 요구를 잠재우는 이벤트로 치러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러한 우려는 1984년 교황 방한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더욱 그렇다.

30년 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방한 둘째 날 행사는 5‧18의 씻을 수 없는 상처와 눈물이 마르지 않은 광주, 무등 경기장에서 열린 ‘화해와 사랑’을 주제로 한 미사였다. 이날 미사에 참석한 6만 5천여 명의 신자들은 분명 큰 위로를 받았으리라 짐작된다. 하지만 역사를 돌아볼 때 ‘정의’가 전제되지 않은 ‘사랑’, ‘용서’, ‘화해’란 말들은 얼마나 텅 빈 말인가. 독재가 일상인 당시의 현실에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상황이었다 해도 언론은 교황의 움직임이 전두환의 배려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전두환 대통령의 전용기편으로 광주로’, ‘전두환 대통령의 전용헬기 편으로 소록도로’ 다시 서울로.

영화 「밀양」에서 용서를 위해 찾아온 신애(전도연 분)에게 살인마는 이미 하느님한테 죄를 용서받았다는 말을 던진다. 전두환에게 교황 방한은 광주의 피를 씻을 절호의 기회였으리라. 오늘날 광주에 대한 기억과 추모가 왜곡된 이유를 교황 방한을 이벤트로 접근한 정권과 이에 침묵한 교회에서 찾는다면 너무 무리한 해석일까? 천주교회의 상징인 명동성당에서 열린 세월호 추모 미사에 유족이 아니라 대통령이 먼저 등장하는 상황을 보면 무리한 요구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이유다.

풍경3 교회의 열정

자기 일에 열정을 갖고 신바람에 흥이 난 사람을 보면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주위 사람에게 좋은 기운이 전해지는 걸 알 수 있다. 우리는 복음에서 비롯한 이 신바람과 흥을 얼마나 갖고 있는 것일까? 현대세계를 향해 쇄신과 적응을 외쳤던 제2차바티칸공의회가 끝난지 50년이 지났지만 공의회의 정신이 사목 현장과 신앙인들의 삶에 얼마나 녹아들었는지 의문을 던지는 이들이 많다. 공의회까지 갈 필요도 없다. 꼭 30년 전 개막됐던 ‘한국천주교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는 한국교회의 제2차바티칸공의회라는 숱한 찬사와 혁신적인 의안집들을 결과로 남겼지만 화려한 말잔치로만 끝났다. 제2차바티칸공의회에 이은 또 한 번의 좌절이었다. 그 이후로도 여러 교구가 교구 시노드라는 이름으로 쇄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지만 말잔치에 그쳤던 ‘200주년 사목회의’의 전철을 밟는 수준에서 그치고 말았다. 대체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쇄신의 기회가 몇 차례 좌절되는 경험을 하면서 ‘돈 낭비’, ‘시간 낭비’, ‘조사 혹은 진단 무용론’ 등의 불만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필자가 보기에 가장 큰 문제는 “복음적 열정의 상실”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열정 있는 사목자, 신앙인들은 찾기 어렵고, 종교 공무원이이 된 사목자들이 많은 교회에 교황은 이렇게 말한다. “교회의 관습과 행동 양식, 시간과 일정, 언어와 모든 교회 구조가 자기 보전보다는 오늘날 세계의 복음화를 위한 적절한 경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복음의 기쁨 27항)

최근 교황 방한이 한국교회의 쇄신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어느 교계언론의 조사결과에 이렇게 답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교황청 대변인의 말처럼 이번 교황의 방한이 단지 하나의 이벤트이거나 형식적인 잔치가 아니라 교회 쇄신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만들어야 한다면, 결국 그 쇄신의 의지와 열정은 우리 안에서 배어 나와야 한다고 말이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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