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프란치스코 교황을 맞는 한국천주교회의 자세 – 이호진

이호진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국가, 프란치스코 교황께 드리는 호소

2014416

승현이가 수학여행을 가기 위하여 탑승한 세월호가 침몰 중이라는 뉴스를 봤다. 급히 단원고등학교 강당으로 가서 상황 파악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고, 교장은 상황파악도 못 하고 답변하다 욕만 먹고 도망갔다. 이때부터 이렇게도 나라전체가 썩어 문드러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전원구조라는 뉴스가 나왔고, 얼마 뒤 오보로 밝혀졌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분노를 뒤로하고 준비된 셔틀버스로 팽목항으로 갔다. 나의 삶은 너무도 처참하게 무너지기 시작했고, 승현이를 살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해봤으나 모든 것은 허사로 돌아갔다. 아! 정녕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대로 보낼 순 없었다. 어떻게 키운 내 새끼인데, 열 달을 고이고이 품어서 17년간을 목숨 걸고 키운 내 새끼인데….

4월 18일, 바다 위에 떠 있던 선체 일부가 바닷속으로 완전히 잠겼다. 이때부터 승현이와의 이별이 시작됐는데, 그 고통은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가장 참혹한 형벌이었다. 부모와 자식이 생이별하는데 이렇게 잔인하고 처절하고, 혹독하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 한복판에 대한민국이 있었다. 재난에 대한 준비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고, 육‧해‧공이 달려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도 구해내지 못했다. 나는 굳게 믿고 있다. 국가가 학살시켰다고. 피 말리는 시간은 무심하게 지나갔다. 4월 30일 새벽 4시 40분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승현이를 만났다. 그 순간 눈앞이 하얘졌고, 분노와 증오심이 치밀어 올라 어쩔 줄 몰랐다. 살아있는 모두를 죽이고 싶었고, 상대가 누구든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고, 씹어 먹고 싶었다.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눈앞에 선했다. 수영도 못하는 승현이가 얼마나 몸부림 쳤을지, 바닷물을 먹으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얼마나 아빠를 찾았을지를. 302명이 이렇게도 처절하게 죽어가고 있을 때 물위에 있는 무리들은 철저히 외면했고 그 썩어빠진 무리의 중심에는 방송과 신문들이 있었다. 나는 이들을 증오한다. 피지 못한 청춘들, 그리고 희생자 302명의 비참한 죽음을 외면했던 그 인간들은 반드시 아이들이 내리는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많은 분이 승현이의 안타까운 죽음을 함께 해주셨다. 너무도 많은 친구가 찾아왔고, 광주대교구의 손대철 신부님께서는 대형 화환도 보내주셨다. 손 신부님의 화환은 승현이 옆에 세워졌고 그 자리에 있던 국무총리의 화환은 버려졌다. 김관수 신부님은 집까지 찾아주셨으며, 유기영 신부님은 집에서 주무시고 가셨다. 보나 수녀님은 먼 길 마다치 않으시고 안산까지 오셨다. 백선진 수녀님도 찾아주셨다. 스텔라 수녀님도 아름이(승현이 누나)에게 각별한 정을 주셨다. 신자가 아닌 내가 이렇게도 큰 은혜를 받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모니카 수녀님도 매우 드문 일이라 했다. 또 있다. 바로 손석희 교수님이다. 마주앉아 내 말을 들으시며 눈물을 흘리셨고, 나의 아픔을 진정으로 함께하시려 했던 분. 나는 그분의 눈물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승현이에게 다음 세상에는 좋은 세상에서 태어나라는 글귀와 함께 사인을 해주셨는데, 코팅으로 마감처리가 되어서 승현이 옆에 나란히 있다. 아직 사망신고도 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훗날 나와 함께 안치될 것이고 사망신고도 나보다 5분 늦게 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 동현이(승현이 형)의 몫이다. 너무나도 보고 싶다. 우리 승현이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바란다

세월호에서 302명이 세상을 떠났다. 이 학살의 진실을 위해선 반드시 유족의 입장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아야 한다. 유족의 이름으로 분노해야 하고, 슬퍼해야 하며, 국정조사를 해야 하고, 책임자 소탕 및 처벌을 해야 하고, 유족이 참여하는 수사권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 유족의 이름으로 끝까지 가야한다. 위의 조건이 선행되지 않으면 다음엔 3,000명이 죽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지구촌의 또 다른 국가라고 불리는 바티칸은 하느님의 은혜가 늘 충만 한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이며 가장 적은 인구가 사는 곳이지만 세계 각국에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하다. 바티칸의 국가 원수인 교황님이 방한하신다고 한다. 슬픔과 비통함으로 점철된 이 한반도에 어떠한 메시지를 던지실지 궁금하다. 삶의 무게에 지친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주실까? 아직 세례를 받지 못한 예비신자로서 교황님이 들어주셨으면 하는 이야기는 이런 것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죽지 못해 산다’고 말하는 쪽방촌의 홀몸노인 분들, 하루하루를 힘들게 견디며 살아가는 전국의 소년소녀 가장들, 성금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4년째 국가 보상을 받지 못하고 아직도 소송 중인 금양 호 선원, 8년 동안 하고 싶은 말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때를 기다리는 밀양 송전탑 어느 노인분의 절규……. 지금도 세상은 이들을 외면하지만, 소수의 신부님과 수녀님들께서 하느님을 대신하여 제주 강정마을에서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다. 또한,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로 또 다른 고통에 시달리는 세월호 유족들도 있다. 외롭고 억울한 이 모든 분에게 교황님의 따스한 손길이 닿았으면 한다. 교황님이 주님의 은혜로움과 자비하심을 이 땅 구석구석에 흠뻑 뿌리고 돌아가시길 바랄 뿐이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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