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프란치스코 교황을 맞는 한국천주교회의 자세 – 최재민

최재민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꽃동네 새들의 성공적인 면담을 위하여

‘가난한 이들의 벗’이라 불리는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서 8월 한국을 방문한다. 교황님의 방문은 한국의 천주교 신자들에게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에게 큰 기쁨이 되리라 생각한다. 나 또한 교황님의 방한 일정에 마음이 설렌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돌덩이가 올려져 있는 것처럼 마음이 무겁다. 교황님의 꽃동네 방문 일정 때문이다.

꽃동네와의 첫 만남

꽃동네에 처음 방문한 것은 탈시설을 원하는 이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예상외로 훌륭했다. 꽃동네는 외진 곳에 있으면서 산의 아름다움을 시설의 외관으로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풀잎의 푸름과 꽃의 아름다움, 그 자체로 완전한 것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새소리가 은은하게 들리는 곳이었다. 새소리는 꽃동네에 온 이유도 잠시 잊게 할 만큼 나를 매료시켰다. ‘피정하러 왔던가?’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새소리는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꽃동네에 탈시설을 원하는 이들을 만나러 왔는데, 새소리는 이곳이 살만한 곳처럼 느껴지게 했다. 이 사이에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하느님의 몸이라고 불리는 산의 푸름과 그 생명력, 하느님의 말씀과 공동체가 있는데, 왜 나오려고 하는지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새소리는 계속 내 귀를 간지럽혔고, 머리는 지끈지끈 아팠다. 나무 팔각정에서 앉아서 새소리를 들으며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이내 탈시설을 원하는 분들이 오셨다. 이분들은 나와 동료 활동가에게 첫 인사로 ‘오래간만이네요’라는 말을 건넸다. 오랜 기다림이 묻어났다. 몇 마디 인사를 주고받고 체험 홈, 부양의무제, 장애등급제 심사에 관한 내용과 자립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내가 만난 분들은 꽃동네가 답답하다고 하며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더 이상 타인의 의지로 생활할 곳을 결정하고 싶지 않다고 하며, 두렵기도 하지만 자립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대화하면서 탈시설을 원하는 분들의 얘기를 들었을 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 꽃동네 거주인분이 자립에 대한 의지를 말할 때, ‘재민아, 꽃동네가 살만하다는 건 네 생각이고’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네가 뭔데 내가 꽃동네에 살만한지 아닌지를 생각하느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하느님 앞에서 내 건방진 태도와 교만함을 인정해야 했다. 고통스러웠다. 달콤했던 새소리가 이들에게는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소리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교황님의 꽃동네 방문

타인의 의지로 지역사회에서 배제된 채 격리되어 살고 있는데, 교황께서 내가 사는 곳을 칭찬하러 오신다면 기분이 어떨까? 시설에서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교황님께서 시설에 오셔서 ‘당신은 하느님의 형상’이라는 등의 말만 하고 로마로 돌아가신다면 기분이 어떨까? 진보 장애인 운동계가 교황님께 꽃동네 방문 계획을 철회할 것을 간곡히 요청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교황께서 가실 곳은 장애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 아니라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도록 투쟁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에 인해 사회적 안전망을 보장받지 못해 생을 마감한 이들의 영정이 있는 광화문 농성장에 오셔서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폭력에 대해 말씀해주셨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교황청의 발표로 교황님의 방한 일정이 확정되었다. 이변이 없는 한 교황님께서는 8월 16일 오후 꽃동네를 방문한다. 한번 생각해보았다. 교황님께서 꽃동네에 가실 때 이런 모습이면 어떨까?

교황님의 꽃동네 방문, 이런 그림은 어떤가?

청와대가 제공한 헬기를 통해 교황님은 음성 꽃동네로 향한다. 그런데 헬기를 타고 외진 곳으로 갈수록 불안하다. ‘시설이 지역사회와 분리된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내색하지 않으신다. 일단 참으신다. 도시와 멀어진다고 꼭 지역사회에서 분리되는 것이 아니니까. 아름다운 시골 공동체들은 얼마나 많은가? 교황님은 꽃동네에 도착했다는 안내를 받는다. 헬기에서 들여다본 꽃동네는 산골 안쪽에 있다. 시설 주위에 인가는 하나도 없다. 교황님은 충격에 빠진다. 시야가 트이는 시설의 쾌적함, 잔디 구장, 산과 나무, 꽃과 들풀의 푸름, 반갑게 인사하는 수사님, 수녀님, 종사자들은 교황님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오웅진 신부님의 인사도 그다지 반갑지 않다. 헬기의 시끄러움 뒤에 들리는 새소리가 교황님의 머리를 지끈지끈 아프게 한다. 교황님은 집단으로 격리되어 생활하는 장애인들의 상황을 보고 분노한다. ‘서울 거리에서 장애인을 쉽게 볼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군.’ 교황님은 불처럼 화를 낸다. 성전을 장사꾼들의 소굴로 만든 이들에게 분노한 예수님처럼!

조금 억지스러운 상상이 현실이 되길 바란다. 교황님께서 장애인들을 지역사회에서 배제하고 시설에 격리한 우리 사회에 따끔한 한 마디를 해주셨으면 좋겠다. 한국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더 이상 하느님의 이름으로, 장애인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장애’라는 차이를 차별의 이유로 만들지 말라고 한 마디 해주셨으면 한다. 어떻게 하면 상상을 현실화할 수 있을까? 나는 새들에게 희망을 건다. 교황님이 음성 꽃동네를 방문하는 8월 16일, 꽃동네는 언제나 그렇듯이 새소리로 가득할 것이다. 교황님과 꽃동네 새들의 면담이 공식 일정으로 계획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꽃동네 새들이 타의로 시설 안에서 살아야만 하는 이들을 대변해서, 사람은 시설에서 살기에 너무 거대하고 고귀한 존재라는 것을 교황님께 말해줬으면 한다. 꽃동네 새들이 오늘도 체험홈에 자리가 나길 기다리며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가 사라지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들이 있다는 것을, 이들의 골방 안 신음을, 지붕 위에서 소리 높여 외쳐주길 바란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꽃동네 새들의 성공적인 면담을 위해 두 손 모아 기도할 것이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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