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돋보기 – 다시, 한국 가톨릭 언론을 보다

엄재중

다시, 한국 가톨릭 언론을 보다

정현진 기자 

 

8월 방한하기로 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일정이 오늘 확정됐다.

18일 교황청과 한국 천주교 교황 방한 준비위원회(위원장 강우일 주교)가 공식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8월 14일 오전 10시 30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4박 5일 간의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교황은 애초 예정된 대로 첫날 청와대를 방문해 박근혜 대통령과 면담을 갖고 주요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연설한다.

8월 15일 오전에는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봉헌하고, 이 자리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을 만난다. 이날 오후에는 세종시 대전가톨릭대학교에서 아시아 청년대회 참가자 대표 20여 명과 간담회를 갖고, 성 김대건 신부의 생가터인 솔뫼 성지로 이동해 아시아 청년대회 참석자들과 만난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아시아 젊은이들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겪는 고민을 듣고 교회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청년들을 위한 연설을 진행할 계획이다. 아시아 청년대회 참석은 이번 교황 방한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다. 아시아 청년대회에는 총 23개 국가 약 2,000명의 청년들과 약 4,000명의 한국 청년 신자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16일 오전에는 이번에 시복되는 순교자 중 27위와 103위 성인 중 44위가 처형당했던 서울 서소문 순교성지를 찾아 참배한 후, 오전 10시 서울 광화문에서 봉헌되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 미사’를 집전한다. 광화문은 순교자들이 수난을 당한 형조터, 우포도청터, 의금부터가 있는 자리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시복 미사에는 천주교 신자 20여만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시복식이 끝나면 충북 음성 꽃동네를 방문해 희망의 집 장애인들을 만나고, 이어 수도자 4천여 명,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대표들을 각각 만나 격려한다.

17일은 오전 11시 해미순교성지에서 아시아 주교들을 만나고 오후 4시 30분 해미읍성에서 봉헌되는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미사를 집전한다.

마지막 날인 18일 오전 9시에 7대 종단 지도자들과 만난 후, 9시 45분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봉헌하는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서 한반도 평화 메시지를 발표한다. 이 미사를 마지막으로 공식 일정을 마친 교황은 오후 12시 45분 서울공항에서 환송식을 갖고 오후 1시 로마로 돌아간다.

한국 천주교는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 때부터 교황 방한을 추진해왔지만, 베네딕토 16세의 사임으로 무산됐다. 지난해 3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하면서 아시아 청년대회를 계기로 방한 계획이 성사됐다.

현재 교황 방한 준비는 천주교 교황 방한 준비위원회가 진행하고 있으며, 교황 방문지 관할인 서울, 대전, 청주에서도 각 교구장을 위원장으로 교황 방한 준비위원회가 구성됐다. 정부 역시 별도의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정부지원위원회’를 마련하고, 청와대, 외교부, 문화체육관광부가 함께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천주교 측과 정부는 지난 3월 28일 정부지원단(단장 홍윤식 국무조정실 제1차장)과 상견례를 가진 뒤, 현재까지 정부와 긴밀히 협의하며 방한 준비를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오는 6월 20일에는 서울과 대전, 청주교구 준비위원회를 포함한 천주교 교황 방한 준비위원회 각 분과 위원들이 명동대성당에서 강우일 주교 주례로 준비위원회 전체 미사를 봉헌할 예정이다. 또 미사 후에는 각 위원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한다. (전문)

 

프란치스코 교황의 구체적인 방한 일정이 지난 6월 18일에 교황청에서 발표되었다. 교황의 방문행사 일정이 보통 이렇게 구체적으로 발표되는 것인지 놀랄 정도로 날짜와 시간별로 상세한 것이었다. 물론 이 일정은 이미 이런저런 경로로 알려진 것과 큰 차이가 없다. 교황이 현 정부의 무능과 실정, 오도된 가치관과 역사의식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는 일부의 지적이 있음에도 교황은 청와대를 방문해서 대통령을 만날 것이고, 광화문에서 시복식을 진행하려면 이 민족과 역사에서 교회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뼈저린 자기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광화문 시복식은 확정되었고, 각종 불법으로 얼룩지고 거대한 장애인 격리시설로 전락한 곳에 대한 교황의 방문은 문제가 있다는 방문 반대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꽃동네 방문은 일정표 안에 고정되었다.

많은 사람이 원한 것이었지만 그것은 정말 예기치 않게 왔다. 갑작스러운 교황 방한 소식, 짧은 준비 기간과 단 4일의 방문 기간 등을 두고 한국 교회는 앞으로는 크게 환영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다소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것 같다. 물론 교황의 공식적인 방한 결정 이전에도 이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막상 그것이 현실화되고 나서 정해진 일정 안에서 각 교회의 주체들이 이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교황의 공식 방한 행사는 지금까지 우리 교회가 그래 왔던 것처럼 분명히 아주 잘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대개 보이지 않는 이면에 있는지 모른다. 보이지 않는 말들이 보이는 실천들을 규정짓는 경우는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세상에는 아주 허다하다. 교황 방한을 둘러싸고 교회 내 이른바 진보, 보수 의견 그룹, 교구 간에는 크고 작은 관점 차이와 미묘한 불협화음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것은 여하한 노력이 없다면 교황 방한 이후에도 한국 교회의 문제로서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그것은 교황 방한 이전부터 지속하여 오던 것들이 교황 방한이라는 새로운 계기 아래 아주 조금 수면 위로 드러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불협화음이 결코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또 사람이 함께 사는 어느 곳에서든 발생하는 이견(異見)이 교회 안에서만 없다고 할 수 없다. 현세의 삶 안에서 교회가 추진해야 할 적절한 복음화의 경로를 모색하는 데 이것은 아주 중요하며 적극적으로 권장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주님은 한 분이시고, 그분이 가르치신 복음은 하나이지만 그를 실천하는 방법은 제자의 인간적 능력과 처한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이 다양한 실천들은 단일한 원천으로 수렴되어야 한다. 주님 제자들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그 유일한 원천은 ‘복음’이다. 모두 자기 의견이나 입장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것이 교회 안에서 참으로, 공식적으로 통용되려면, 그 직무의 높고 낮음을 떠나 복음적 기준과 방법에 부합한 것이 되도록 입증할 책임이 있다. 만일 그 입증 과정에서 실패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직무상 또는 인간적 욕망을 은폐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그 주장자들은 철저한 자기 쇄신을 거쳐 다시 이를 입증하려 계속해서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치열한 입증의 과정 안에서 교회는 단 1센티미터라도 복음화로 전진할 것이다.

왜 이렇게 당연한 이야기를 길게 하고 있는가? 그렇다. 교회 언론에 대해 말하기 위함이다. 이 오래된 이야기를 다시 한 번 하려 한다. 왜냐하면, 그만큼 교회 안에서도 서로 다른 의견과 실천들의 미디어(media), 매개의 역할을 적절하게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은 교회 언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필자가 보기에 우리 교계 언론에 가장 크게 결핍된 것이 바로 이 다른 의견들의 표출이다. 그저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아주 모호하게, 그리고 지극히 당위적인 말들만을 하고 있다. 여기에는 어떤 갈등이나 대립도 볼 수 없다. 이 이견 없는 언론을 우리는 과거에 많이 보아왔다. 바로 관보(官報)다. 거기에 무슨 이견이 있던가? 이것은 언론을 사회의 거울이라고 부르는 오래된 말에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교회 언론이라면 교회의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거창하게 말해서, 한국의 가톨릭 언론은 한국 가톨릭교회 안에 존재하는, ‘복음화’ 비전과 방법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서로 다른 의견과 실천들을 자신의 지면 안에 반영해야 한다.

어디서 연유했는지 모르는 이 갈등 기피적 언론관이 가톨릭 언론 안에는 아주 깊이 배어 있다. 그런데 이것은 전혀 복음적 태도도 교회적 입장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사도시대에 율법의 실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베드로와 바오로의 저 치열한 논쟁을 보라! 사도행전의 저자나 바오로 사도는 공동체의 안락한 평화보다 불안한 복음적 투쟁을 선택한 것이다. 지금 우리 언론에게는 이런 열정이 없다! 어떤 특별한 기획 의도도 없이 그저 교회 당국의 일방적인 가르침과 소식만을 전달하고, 평신도나 수도자의 의견 등은 그저 아주 수동적인 입장에서만 다룰 뿐이다. 여기에는 주님이 주신 복음에 맛들이고 기뻐하는 제자들의 모습도, 이 복음의 실천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투신하는 선교사들도 없다. 기쁨과 열정의 부재, 이것이 필자가 오늘날 가톨릭 언론에서 느끼는 것이다. 물론 이 가톨릭 언론은 단지 그만의 문제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오늘날 한국 가톨릭이 처해 있는 문화적 습속의 현주소이며 그것이 밖으로 투사되어 박힌 한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몇 년 전에 가톨릭 대안 언론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가톨릭 뉴스 지금 여기’는 어떠한가? ‘대안’을 강조하고 ‘평신도의 관점’을 말하는 진보 언론 가톨릭 뉴스 지금 여기는 오늘 과연 어떤 ‘대안’과 ‘진보’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엄재중 의정부 교구 신자. 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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