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교회는 지금 – 파키스탄의 아픈 현실과 파키스탄 교회의 ‘은총의 혁명가들’ : ‘평신도 신학 연구소’(Theological Institute for Laity)

노주현

파키스탄의 아픈 현실과 파키스탄 교회의 은총의 혁명가들

: ‘평신도 신학 연구소’(Theological Institute for Laity)

여러 해 전, 파키스탄에서 10년 이상 선교사로 지내다 오신 아일랜드 출신의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신부님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신부님은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바꿔 놓은 어떤 일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 일은, 2005년 11월 8일 파키스탄 북부 지역에서 일어난 대지진으로 하루아침에 75,000명이 목숨을 잃고 10만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고 350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은 대참사의 현장에서 2년 정도 구호활동에 참여한 경험이었다. 정말 슬프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때까지 파키스탄에 대해 별다른 관심도, 아는 것도,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 사건을 머리로는 알아들었지만 그 사람들을 진정 내 가슴으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마음은 부족했던 것 같다. 부끄러운 고백이다.

올해로 4년째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ederation of Asian Bishops’ Conferences: 이하 FABC) 일을 해 오고 있다. FABC 평신도・가정위원회 산하 아시파(Asian Integral Pastoral Approach: AsIPA, 아시아 통합사목) 사무국 총무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 여러 나라를 방문하는 일이 적지 않다. 아시파 사무국은 아시아 지역교회가 소공동체(기초교회공동체)를 통해 ‘친교 공동체’, ‘참여하는 교회’로 쇄신해 가려는 노력과 여정을 여러 방식으로 지원하고 동반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파키스탄에는 지난 3년 동안 업무로 해마다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신자들 가정을 방문하고, 본당의 다양한 모임을 통해 신자들을 만나며, 주교와 수도회 장상・신학생・교구 사목팀과 평신도 지도자들을 위한 소공동체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이제, 파키스탄 하면 마음에 떠오르는 이들이 참 많아졌다. 그들의 목소리와 웃음도 내 안에서 들려올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파키스탄에 대한 뉴스가 나오면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런데 언론 보도를 통해 전해지는 소식은 놀랍고 충격적인 일이 대부분이다.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그들과의 ‘만남’과 ‘체험’이 내 마음을 울린다.

지난 6월 8일 파키스탄의 최대 도시 카라치에 있는 국제공항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탈레반 무장 세력의 테러로 무장 괴한 10명을 포함해 38명의 사망자와 23명의 부상자가 생겨났다고 한다. 카라치 대교구 교구장이신 요셉 쿠츠(Joseph Coutts) 대주교님이 작년 11월 카라치에서 만났을 때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어제는 카라치에서 테러로 인한 사망자가 여섯 명에 불과했어요. 불행 중 다행입니다. 카라치는 본래 ‘빛’의 도시라는 뜻인데 이제 ‘피’의 도시로 변해 버렸습니다.” 탈레반과 알카에다 같은 과격 무장 이슬람 단체들이 자행하는 끊이지 않는 폭력과 테러 탓에 대다수의 선량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고통과 상실, 슬픔과 분노로 얼룩진 짙은 어둠의 밤을 보내고 있다. 이 땅의 어둠을 걷어내는 정의의 ‘빛’은 어디에서 비춰오고 있을까?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에서는 이슬람과 마호메트를 모독하는 이들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신성모독법’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왜곡되어 무분별하게 남용되고 있다. 이 법에 의해 죄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무기징역이나 사형까지 선고받고 피고자의 가족과 친척, 마을까지도 무자비하게 공격, 탄압받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또한 정부와 경찰 관계자들의 묵인과 방조로 인해 변화와 개선의 기미도 보이지 않고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2011년만 해도 불과 두 달 사이에, 마호메트를 모독했다는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은 여성 그리스도인을 옹호하고 ‘신성모독법’을 비판했던 주지사와, 이 법에 반대해 왔던 유일한 그리스도인 장관이 무장 괴한들에 의해 피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러한 현실에서 일반 그리스도인들이 느끼며 살아가는 위협과 공포는 실로 어마어마할 것이다. 지난 1998년, 파이살라바드 교구 교구장이며 파키스탄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이셨던 요한 요셉(John Joesph) 주교님이 ‘신성모독법’에 의해 한 그리스도인이 재판을 받고 있던 법원 앞에서 이 ‘신성모독법’에 항거하며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 그가 남긴 유서의 말씀은 그의 깊은 고뇌와 사랑을 보여 준다. “이 장벽을 허무는 사명에서 당신 자녀들을 위해 바치는 제 피의 희생을 주님께서 받아 주신다면 저는 정말 행복할 것입니다.” 시대의 십자가를 지신 요셉 주교님은 무슬림들에게도 깊은 존경을 받고 계시다. 지금도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서 부활하고 계실 것이다.

파키스탄의 그리스도인들이 본래 ‘평화’의 의미를 지닌 ‘이슬람’과 대화하며 상호이해와 존중, 화해와 용서를 통해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평화의 ‘길’은 어디에서 열리고 있을까?

폭력과 테러, 갈등과 분쟁, 여성과 소수종교에 대한 차별과 소외, 억압과 탄압, 인권 유린과 가난이 만연한 파키스탄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파키스탄 가톨릭교회(이하 교회)에는 지난 25년 동안 꺼지지 않는 정의와 평화의 ‘빛’을 밝혀 온 ‘평신도 신학 연구소’가 있다.

1989년에 파키스탄의 몇몇 사제와 평신도 그룹에 의해 자발적으로 설립된 이 연구소는 올해 2월, 설립 25주년을 기념하였다. 이 연구소의 본래 명칭은 파키스탄 우루드(Urdu)어로 ‘Maktaba-e-Anaveem Pakistan’(이하 MAP)이지만 영어 명칭인 ‘평신도 신학 연구소’(Theological Institute for Laity: TIL)도 같이 통용되고 있다. ‘Maktaba’는 아랍어이지만 우루드어에서도 공용되는데, 특정한 관점과 지향을 지닌 ‘학파’, 그리고 비슷한 사상을 가지고 실천 활동에 투신하는 ‘사람들의 연대’라고 해석할 수 있다. ‘Anaveem’은 히브리어로 성경에서 말하는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뜻하는데, 정의와 희망을 위해 투쟁하고 기도하고 해방과 구원을 갈망하며 더 나은 새 세상의 도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연구소에서 여러 해 동안 일한 평신도 신학자 무쉬타크 아사드(Mushtaq Asad)는 “‘MAP’은 함축적이고 다의적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뜻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가난한 이들 사상’, 즉 가난한 이들의 관점에서 살펴본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상입니다. ‘MAP’이 본래 파키스탄의 ‘상황신학 포럼’을 만들어 가려는 생각과 바람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창립 멤버이자 지금까지 연구소 책임을 맡아 온 파키스탄 라호르 대교구 엠마누엘 아시(Emmanuel Asi) 신부는 “‘MAP’의 비전은 궁극적으로는 인간 해방과 사회 변화를 지향하며 평신도 신학 교육과 훈련을 통해 공동 책임과 권한을 가진 평신도를 양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출발이자 토대는 바로 ‘지금 여기’ 파키스탄의 ‘상황’이 되어야 합니다”라고 강조하였다. “또한 ‘MAP’은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다른 계시종교의 성전과 성경을 존중하면서 영감을 받고, 나아가 다른 모든 종교와 신앙의 영성과 저술을 포용하면서 활동해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역설하였다. ‘MAP’은 평신도를 위한 다양한 신학 프로그램을 단계별로 운영하고 교육 수료자들이 자신이 속한 교구와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모임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그 결과 현재 여러 지역에 ‘MAP’의 지부 형태의 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또한 ‘MAP’은 그동안 250여 권의 간행물을 발간, 보급해 왔고 이슬람과의 대화와 협력을 위해 포럼 및 정기 모임을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MAP’은 지난 25년 동안 파키스탄에서 “자신의 안위를 떠나 용기를 갖고 복음의 빛이 필요한 모든 ‘변방’으로 가라는 부르심”(「복음의 기쁨」, 20항)에 기쁘게 응답하며 진정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198항)가 되기 위해 힘차게 노력해 왔다.

‘MAP’은 나자렛의 가난한 예수가 ‘하느님 나라’를 이 세상에 실현하기 위해 앞서 걸어가신 아름다운 그 ‘혁명’의 길에 동참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종도 그리스도인은 혁명가가 되어야 한다고 하시지 않았던가! “만약 그리스도인이 이 순간 혁명가가 아니라면 그는 더 이상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은총의 혁명가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노주현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연구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소공동체소위원회 총무와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 평신도・가정위원회 산하 아시파(AsIPA: Asian Integral Pastoral Approach, 아시아통합사목) 사무국 총무를 맡고 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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