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톡톡 – 생을 견디는 빛 – 엔도 슈사쿠, 『깊은 강』

이승혜

생을 견디는 빛 엔도 슈사쿠, 『깊은 강』

그의 아내가 죽었다. 평생 살을 맞대고 잠이 들었고 앞으로도 그러 할 것이라 의심치 않았던 아내의 죽음은 그에게 ‘검은 침묵과 검은 공허감, 검은 쓸쓸함(p.31)’을 남겼다. 홀로 텅 빈 집안에서 그는 육체보다 더 강한 아내의 흔적에 파묻혀 ‘허허로운 날들’을 보낸다. 아내에 대한 그리움으로 괴로워하던 그는 아내가 병실에서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며 했던 ‘나 반드시…. 태어날 거니까, 이 세상 어딘가에. 날 찾아요……. 약속해요. 약속해요(p.25).’라는 말을 기억해낸 후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가 결국 향한 곳은 인도였다. 그는 아내의 환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미할 가능성만을 붙잡은 채 여행길에 오른다. 평생 한 번도 신을 믿어본 적 없었던 만큼 삶에 있어 현실적이었던 그였기에 여행의 목적지와 이유는 자신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지만, 아내와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은 그러한 당혹스러움마저 잊게 하였다. 이 소설에서는 그가 인도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된, 함께 여행을 떠나는 3명의 인물이 더 등장한다.

병으로 죽음의 고비를 넘길 때마다 자신의 곁을 지키다 죽음을 맞이했던 구관조에 대한 애틋함을 가지고 있는 누마다, 대학 시절 가톨릭 신자인 오쓰를 유혹한 후 매정하게 버려 그에게 상처를 준 기억을 가지고 있는 미쓰코. 그리고 또 다른 인물인 기구치는 과거 태평양 전쟁에 참전하여 죽을 고비를 넘기지만 그를 항상 보살펴준 전우 쓰가다 덕분에 전쟁에서 살아나온다. 그러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죽음을 목전에 둔 그와 만나게 되고 그가 죄책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던 비밀을 알게 된다. 기구치는 쓰가다가 있는 곳에서 그를 돕던 가톨릭 자원봉사자인 가스통을 만나게 되고 가스통이 쓰가다를 위로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결국 쓰가다는 죽게 되고 기구치는 쓰가다의 명복을 빌어주기 위해 인도에 있는 절을 찾게 된다.

그들이 고민하고 마주하려는 것들은 현실 속에서 시간이 흐르면 해결되는, 그러한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인도로 모여든 사연은 각기 다르지만 삶과 죽음이 주는 알 수 없는 막막함에 신음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현실 속에서 그들은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혹은 마주하기 위해 먼 길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다. 인도에는 수많은 신과 전설이 뒤섞여 있으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도인들의 마음은 신을 향해 있다. 우리와 같은 지구 상에 존재하지만, 그들이 신비롭게 비춰지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소설에서 이러한 인도인들과 유사한, 그래서 유독 두드러져 보이는 인물이 있는데 오쓰다. 오쓰는 이 소설의 중추적인 인물로 짝사랑했던 미쓰코에게 매정하게 버림받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신부가 되기 위해 준비해 왔으나 정통 가톨릭과 의견이 맞지 않아 신부로서의 자격이 유예된 상태다. 소설 속에서 오쓰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 부분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미쓰코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부분에서 오쓰는 자주 등장하며, 만약 오쓰가 언급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의 그림자는 미쓰코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 이는 미쓰코가 평생에 걸쳐 고민하고 괴로워했던 것이 오쓰와 닿아있기 때문이었다. 신을 경멸하는 미쓰코에게 오쓰는 신경 쓰이는 존재 그 이상이다. 미쓰코는 오쓰와 신을 화두로 대화할 때마다 날카롭게 쏘아붙이며 오쓰를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한다.

마음이 없다면 증오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소설을 읽다 보면 미쓰코의 관심이 오쓰에게 있다기보다는 그가 믿는 절대자에게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신과 오쓰 사이에 보이지 않지만 강하게 느껴지는 관계에 있다. 미쓰코는 신에 대해 날을 세우는 동시에 오쓰와 신과의 관계를 보며 의문을 품기도 한다. 관계에 대한 미쓰코의 결핍은 그녀의 결혼생활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렇기에 그녀가 프랑수아 모리아크(소설가, 1885년 10월 11일 ~ 1970년 9월 1일)의 소설에 빠져 살게 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녀는 평생을 앓듯 방황하며 살다 오쓰가 있는 인도에 발을 디딘다. 오랜 시간 끝에 오쓰를 찾던 미쓰코가 당도한 곳은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이다. 그곳에서 오쓰는 모두가 냉담하게 외면하는, 돈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과 창녀들의 시체를 옮기는 일을 한다. 오쓰는 결국, 미쓰코의 일행 중 한명인 산조의 잘못된 행동에 격해진 힌두교 인을 막아서게 되었고, 오해를 받아 그들에게 폭행을 당해 목숨이 위독한 상황에 이른다.

오쓰의 죽음이 암시되는 장소인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은 삶과 죽음, 고통과 희망, 불결과 정결 등 이질적인 것들이 서로의 몸을 섞으며 유유히 흘러가는 깊은 강이다. “무엇 때문에 그러한 일을 하시는 건가요?”라고 묻는 미쓰코에게 “그것밖에 이 세계에서 믿을 수 있는 게 없는걸요, 저희는….”이라고 대답하는 백인 수녀의 대답처럼 고통과 죽음이 도사리는 삶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것은 그 속에서도 믿음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승혜 글을 쓰는 것보다 읽는 것을 좋아하며, 동물을 사랑한다. 3년 전 겨울에 분양받은 멍멍이 ‘도도’를 키우고 있다. 최근엔 애완견이 주인의 감정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도도와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노력 중이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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