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방전된 여러분! 무엇으로 충전하시나요? – 박문수

박문수

멈추는 게 저항이다

나의 소진 예방법

나는 반년 전부터 매일 아침 한 시간 남짓 명상을 하고 있다. 사실 향심기도(centering prayer)를 하는 것인데 방식이나 기도 중 의식하게 되는 과정이 비슷해 그냥 명상이라 부르며 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기도를 하지 않는 시간에는 관법(觀法)을 실천하고 있다. 관법은 달리 ‘마음 챙김(mindfulness)’이라 부르는데, 해보니 유학자들이 수련했던 방식과 기도가 익었을 때 의식이 밝아지는 상태와 비슷하였다. 이 둘을 크게 멈춤과 바라봄으로 불러보려 한다. 멈춤은 말 그대로 몸의 움직임, 생각의 움직임 모두를 멈추는 방법이다.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함’은 동작을 멈추고 고요히 그리고 다소곳하게 바닥이나 의자에 앉아 있는 상태이다. 일하고 있다면 일을 멈추고, 운동하고 있다면 마치고 조용히 움직이지 않는 상태로 있어 보는 것이다.

‘생각을 멈춘다 함’은 몸을 멈춘 상태에서 눈을 감고 잡념들이 떠오르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는 동작을 멈추는 방법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어렵다. 그러나 꾸준히 반복하면 잡념 혹은 분심들에 덜 끌려다니게 된다.

바라봄은 나의 동작, 말, 몸에 느껴지는 감각들 모두를 명료하게 의식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를테면 밥을 먹을 때 씹는 횟수, 그 때마다 음식 알갱이들이 혀에 닿는 감각들을 의식하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동작을 의식하면 확실히 자기 조절능력이 향상된다.

내가 실천하는 방법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마다 다 같을 필요는 없지만,방전(放電) 이른바 ‘소진(burnout)’을 해결하고 예방하는 데 이만큼 좋은 방법이 없어서다. 그동안 여러 종교의 수행법들과 요즘 유행하는 영성 수련법들도 공부해보았는데 핵심을 이 ‘멈춤’과 ‘바라봄’으로 요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MBSR(mindfulness based stress reduction)처럼 이 둘을 수행하는 사이사이에 몸을 움직이는 방법을 추가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기도를 계속 하면 오래 앉아 있기 힘든데 그럴 때 오십 분하고 십 분은 걷거나 몸을 푸는 식이다. 우리도 일하다 피곤하면 잠시 일어나 커피를 마시거나 음악을 듣곤 하는데 꼭 이런 식이다. 너무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긴장이 생기는데 이를 조절하는 방식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멈춤이 치유다

사실 소진은 멈추지 않아 일어난다. 몸과 마음을 쉬지 않고 계속 움직이게 놔두면 누구나 반드시 지쳐버린다. 나도 마찬가지다. 몸을 혹사한 뒤에 누군가를 만나면 친절하기 힘들다. 온몸이 지쳐 있는데 나에게 무슨 일을 더 하라든가, 또는 해달라든가 하면 군소리 없이 그리고 마음에서 저항감 없이 해주기가 쉽지 않다. 또 생각이 복잡한데 누군가 말을 걸어오거나 책을 보게 되면 그 말과 글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영성가들이 이런 상태를 흙탕물에 비유했다. ‘흙탕물을 가라앉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가만히 놔두는 것이다. 그러면 저절로 가라앉아 이내 물은 사물을 비추는 거울의 상태가 된다.’ 몸을 움직일 때나 생각이 쉬지 않고 계속되는 상태가 흙탕물이고, 이를 가라앉히는 방법이 멈춰서 고요히 생각을 쉬는 상태로 두는 것이다. 그 상태가 되면 저절로 우리의 ‘자기 자신과 이웃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넘치는 본래의 자기 모습’이 나타난다. 이렇게 되기까지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저항 또는 순응 현상들이 다 치유의 과정이다.

멈춤이 저항이다

사실 멈추기 전에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또 무엇을 하는지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힘들다. 마치 엉킨 실타래를 마음이 급한 상태에서 풀려 하는 모습과 같다. 마음이 급하면 엉킨 매듭이 보이지 않아 서둘게 되고 그럴수록 실타래는 더 헝클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천천히 마음을 가다듬고 바라보면 실마리들이 또렷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멈춰보면 내가 무엇에 사로잡혀 있는지 깨닫게 된다. 그때야 내가 산 게 아니라 끌려다녔음을 알게 된다. 제 정신이 들어 내가 주인인지 노예인지 알게 되어 비로소 주체로 서게 된다는 말이다.

자본과 자본가가 우리를 지배하기 위해 꾸미는 계략은 끊임없이 바쁘게 해 다른 생각을 못 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멈추면 그나마 그 적은 임금과 불안정한 일자리도 곧 사라지게 될 거라 위협하는 것이다. 그래서 ‘커피의 역설’과 같이 우리를 영원히 종속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커피의 역설은 이것이다. ‘일하는 시간에 졸지 않으려 커피를 마신다. 그랬더니 그날 밤 잠이 오지 않는다. 그랬더니 다음날 졸려서 어제보다 커피를 더 마신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누구한테나 어느 순간 소진이 찾아온다.

소진은 몸과 마음이 지쳐 무기력한 상태, 남은커녕 자신도 추스르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 상태에서 연민과 연대가 가능할 리 만무하다. 그래서 어떻게든 질주하는 또 그렇게 질주하게 만드는 자본의 흉계를 폭로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멈추어야 한다. 일단 이렇게 멈추어야 저항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역습의 방법은 앞에서 보았듯이 ‘빠름’, ‘몰두’, ‘커피의 역습’이라는 수레바퀴를 멈추고 고요히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연민과 연대의 상태를 회복하는 것이다. 다행히 이렇게 하는 방법에는 자본이 들지 않는다. 머리나 공부도 필요 없다. 그저 그렇게 하려는 마음과 우리의 몸만 있으면 된다. 아마도 그래야 자본에 매이지 않게 되어서일 터이다. 자 당장 멈추어 역습을 시작해보자!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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