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방전된 여러분! 무엇으로 충전하시나요? – 이호진

이호진

내게 위안을 주었던 순간과 사람들

  • 세월호 그 이후의 이야기

팽목항에서의 첫 만남

팽목항에서의 3, 4일간은 정신이 없었다. 무얼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아름이 (승현이의 누나) 와 내가 학부모 막사와 팽목항을 왔다 갔다 하고 있을 때였다. 수녀님 두 분이 팽목항에서 올라오시면서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갔다. 본인도 모르는 어떤 계시가 있었는지 아름이가 수녀님의 팔목을 붙잡았다. 성당 천막 막사 뒤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름이는 동생을 잃은 아픔을 수녀님에게 처음으로 내어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려 보이는 아이가 큰 슬픔을 겪었기 때문에 말을 할 수 있게끔 분위기를 만들어주셨다는 생각이 든다. 안산의 고대병원에서 승현이를 하늘로 보내줬는데 팽목항에서 뵌 백선진 수녀님과 최양금 수녀님, 유기영 신부님이 승현이를 위해 기도를 해주시겠다며 오셨다. 그 감동은 정말 대단했고 충격처럼 다가왔다. 승현이를 보내고 기운을 좀 차렸을 때 그 감사함에 보답하기 위해 다시 팽목항으로 갔다. 승현이를 최선을 다해서 하늘로 보내준 뒤였으니 마음도 편했을 뿐더러 받았던 것을 보답해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팽목항에는 자원봉사로 햄버거나 피자를 만드는 가게들이 있었다. 그곳에서 만든 음식을 수녀님들께 가져다 드리곤 했다. 김관수 신부님께는 “안산에 오실 기회가 되시면 저희 집에 모시고 싶습니다.” 라는 말씀을 드렸다. 팽목항에 있다가 안산으로 돌아오니 신부님께서 우리 집으로 오시기 하루 전날 연락을 주셨다. 더욱 의미가 깊었던 것은 승현이가 수학여행을 간 뒤로 거의 한 달 무렵이 흘렀을 때인데 그 이후 처음으로 가스 불을 켜고 반찬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우리 집에는 6, 7년간 손님이 온 적이 없다. 가스 검침을 한다거나, 위층이나 앞집에서 뭘 물어보느라 잠깐 들어왔다거나 한 경우가 전부였다. 그렇게 긴 시간을 방문해주신 분이 신부님이시라는 게 무척이나 뜻 깊었다.

90분의 만남, 평생의 여운

우연히 본 뉴스를 통해 손석희 교수님이 팽목항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JTBC 취재팀이 있는 곳으로 가서 면담 신청을 하고 기다렸는데 얼마 있지 않아서 전화가 왔다. 본인을 박수지 작가로 소개하며 손 교수님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손 교수님이 계신 차량으로 가보니 차 안에 혼자 계셨다. 검소한 옷차림으로 유명하시지만 그때도 그랬다. 그 분은 나와 함께 울어주셨고, 그분의 눈물을 의심하지 않았다. 다음 날, JTBC 뉴스의 생중계를 보기 위하여 팽목항으로 갔다. 날씨 탓에 발음이 흐트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15분 간격으로 박 작가가 따뜻한 물을 갖다 드리곤 했는데, 세 번째는 내가 물을 드렸다. 손 교수님이 놀라며 고맙다고 말하셨다. 그러면서 바짓단을 올려 양말을 보여주셨는데 순간 눈물이 비쳤다. 그 양말은 내가 전날에 손 교수님과 제작진 분들이 사용하시라고 차량 손잡이에 걸어 놓았던 것이었다. 뉴스가 끝나고 손 교수님은 막내를 잃은 비통함에 한없이 작아진 나를 살포시 보듬고 15미터정도를 배웅해주셨는데 짧은 몇 초의 시간동안 그분의 따뜻함이 송두리째 전해졌고 순간 전율마저 느낄 수 있었다. 그 기분은 후에도 이어졌고 승현이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설레기 시작했다. 급히 광주로 나가서 승현이가 평상시에 좋아했던 나이키 운동복과 런닝화, 축구화. 축구공 등을 사서 승현이가 올 것에 대비했다. 거짓말처럼 승현이는 새벽에 내 품으로 돌아왔다. 4월 30일 새벽 4시50분, 팽목항이었다. 승현이를 보내고 약 1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 박 작가에게서 전화가 왔다. 손 교수님과의 식사자리였다. 팽목항에서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승현이를 만나지 못해서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그 약속을 교수님이 잊지 않고 계셨던 것이었다. 식사 자리에서 “많은 분들이 손 교수님을 따르고 좋아하는데 저처럼 이렇게 식사하면서 대화하는 사람이 몇 분이나 되시는지요?” 라고 물었더니 옆에 있던 박 작가가 말한다. “없어요.” 손 교수님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헤어지는 그 순간에도 덕담을 잊지 않으셨다. “안산에 계시죠? 한 번은 갈 일이 있을 겁니다.” 전철을 타고 집으로 오는 동안에 감사의 문자를 보냈다. ‘존경하는 손 교수님. 잔잔한 여운을 느끼며 돌아갑니다. 귀중한 시간을 내주시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무엇을 하시던 항상 교수님 뜻대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라고.

운명 같은 인연들

내게 위안을 주신 분들의 공통된 모습은 섣부른 위로를 하지 않으셨다는 것이었다. 그 분들은 형식적인 위로를 건네지도 않았다. 다만 아름이와 내 입장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셨을 뿐이다. 이 모든 만남이 우연하게 이루어진 게 아니라, 승현이가 신부님, 수녀님들과 함께 기대서 슬픔을 이기라고 이분들을 보내준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요즈음에는 어디에 가게 되면 항상 새로운 분들과 만나게 된다. 그런데 그 인연이 끊어지지 않고, 어느새 서로 위로하고 이해를 할 수 있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유족이기에 우연으로 그분들을 알았다기보다는 마치 운명처럼 인연이 맺어지게 되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 인연들이 오래오래 내 곁에 남길 바랄 뿐이다.

이호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2학년 8반 고(故) 이승현 군의 아버지. 예수의 골고타 길을 체험하며 신앙을 돌아보기 위해 딸 아름이와, 2학년 4반 고 김웅기 군의 아버지 김학일 씨와 함께 도보 순례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승현이의 누나 이아름 씨가 기록자로서 순례길에 나선 두 아버지의 일상을 ‘누나의 순례일기’ 라는 제목으로 SNS을 통해 공유하고 있다. 자세한 일정은 한겨례 21 페이스북 (www.facebook.com/hankyoreh21) 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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