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방전된 여러분! 무엇으로 충전하시나요? – 김민아

김민아

지구 반대편에서 놀고먹은 이야기

평소 스포츠에 미쳐 산다거나, 피파의 월드컵 홍보문구처럼 지구상 최대 축제에 대한 특별한 기대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브라질에서 개최되는 월드컵에는 자연스럽게 눈이 갔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보려고 새벽에 알람을 맞춰놓기도 하고 외국 선수들의 활약상이나 이적 이야기에 뒤처지지는 않았던 나에게 브라질 월드컵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하는 성지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2014년에 내가 뭘 하면서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채로 3년 전부터 적금을 들었고 올해 6월 그 돈을 받았다.

대학원 박사과정에 진학하면서 공부와 나에 대해 내가 가졌던 기대와 계획들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고 그 과정에서 겪은 한없는 무기력감과 압박감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렇고 그런 대학원생이 되고 싶지는 않았는데 나는 그 흔한 지질이 대학원생이 되어 있었고, 처음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하던 때의 목표도 점점 희미해져 갔다. 어떻게 해서든 여기를 떠나고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공부와 나, 그리고 이 세상 모두를 미워하게 될 것 같았다. 할 일이 산적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는 브라질 상파울루행 비행기를 탔다. 34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브라질은 예상했던 것보다 추웠으며, 언론을 통해 계속 경고되었던 치안 상황도 큰 정신적 피로를 가져왔다. 한국과 알제리 경기가 열렸던 포르투 알레그레는 너무 추웠고, 나와 친구는 둘 다 감기로 고생했다. 길을 걸을 때는 항상 주위를 경계해야 했고, 휴대폰이나 태블릿 PC의 소지로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에 포르투갈어만 잔뜩 적혀 있는 지도 한 장에 의지해 목적지를 찾아가야 했다. 브라질 물가는 너무 비쌌고, 5시만 되면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겨울시즌이라 그나마 마음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시간도 길지 않았다. 우리의 여행은 ‘브라질’ 혹은 ‘남미’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자유, 정열, 낭만 같은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다.

그래서 이번 브라질 여행이 별로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느냐고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 브라질은 나에게 충분한 쉼과 감동을 주었다. 길을 물어보면 20분을 걸어서 기어이 그 장소까지 데려다 주고야 마는 브라질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들이라는 안내책자의 설명만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삶의 방식을 보여주었다. 길거리에서 지도를 보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노라면 여러 명의 브라질인 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서툰 영어로 묻는다. “메이 아이 헬프 유?” 처음에는 월드컵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각성하여 있는 것이라고 느꼈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그건 배우거나 강요되어 나오는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배고프지 않으냐며 자기가 먹으려고 샀던 샌드위치를 뜬금없이 내밀기도 하고, 우리가 잘못된 방향의 버스를 타려고 하자 자신의 버스를 놓치면서까지 우리에게 달려오기도 했다. 무슨 말만 하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오브리가도(고맙습니다)”를 외치고, 길에서 눈길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항상 먼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어도 절대로 뛰지 않고 여유롭게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이들이 남을 도울 때에는 그렇게 재빠를 수가 없다.

축구만 좋아하고 축제를 열어 흥청망청 즐기기만 할 것 같았던 이들은 사실 누구보다도 냉철한 인식과 사고를 하고 있었다. 이번 월드컵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희생당하는 것을 날카롭게 비판했으며, 축구는 좋지만, 피파와 월드컵은 싫다는 말로 스포츠가 사업이 되고 우민정책의 하나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우리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묵었던 숙소는 브라질과 유럽 청년들이 파벨라(브라질의 빈민가)에 사회적 기업으로 세운 숙소였는데, 이들은 브라질의 현재 정치와 경제를 논하면서 평등과 자유, 그리고 인권을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브라질의 아름다운 경관들도 큰 감동을 주었다. 어느 도시에서나 세 블록마다 나타나는 작은 공원들은 그 곳에서 그네 타는 아이들의 웃음만큼이나 푸르렀고, 특별한 제지 없이 외부인에게 항상 열려있는 성당 문은 특정한 개방시간 간판이 내걸려 있는 우리나라의 사정과 대비되었다. 성당 안에서 내국인과 여행객이 뒤섞여 기도하는 모습은 성스럽게 느껴졌고, 달려드는 아이들과 관광객들 한 명 한 명에게 웃으며 축복기도를 해 주는 연로한 신부님을 보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여기에서는 그냥 흔한 모델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코르코바도의 예수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경외감을 불러일으켰고, 리우데자네이루의 이파네마와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맞는 일몰은 현실감 없는 황홀을 가져다주었다. 여태까지는 절망스럽거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상황에서만 시간이 멈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름다운 광경으로 이 세상 시간이 모두 멈추고 숨이 멎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경험한 순간이었다.

브라질에서의 시간은 행복했다. 아름다운 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데 그 이상의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지만 나에게 이 시간이 더욱 소중했던 것은 거의 10여 년 만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간사로 일하고 있는 단체에 대한 계획도, 학업에 대한 염려도, 가족한테서 오는 부담감도, 인간관계에 대한 걱정도 모두 지워버리고 나면, 나에게 다가오는 자극들 하나하나가 모두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새겨지는 것 같다. 다시 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고, 계획하고 평가하고 걱정하고 기대해야 하는 일들이 잔뜩 나를 둘러싸고 있다. 그렇지만 괜찮다. 보사노바 음악을 틀면 이파네마 해변이 내 앞에 펼쳐지고, 해가 설탕산 뒤로 넘어가고, 그 옆에 우뚝 솟아 있는 예수상이 그려질 것이다. 나에게 여행은 아무 일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순간을 위한 훈련이다.

김민아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종교의 시민운동과 사회참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 또한 진보적 기독학생단체인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한기연) 간사로 사역하고 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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