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톡톡 – 끝나지 않은 광주에 대한 이야기 – 한강, 『소년이 온다』

임효진

끝나지 않은 광주에 대한 이야기

  • 한강, 『소년이 온다』

한강의 신작 소설 『소년이 온다』는 5·18 민주화 운동 당시의 광주를 동호라는 소년을 중심으로 그려내고 있는 소설이다. 동호와 그 주변 인물들의 고통을 작가는 섬세하고 치열한 에너지로 구현해내었다. 작가의 에너지가 치밀하게 써내려간 문장 곳곳에 배여 있어서 단번에 읽기에는 어려울 수 있다. 읽다가 중간중간 숨을 내쉬며 책을 내려놓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울렁이는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처음에 이 소설책을 사게 된 계기는 뒤표지에 실린, 다음과 같은 신형철 평론가의 말 때문이었다. ‘5월 광주에 대한 소설이라면 이미 나올 만큼 나오지 않았느냐고, 또 이런 추천사란 거짓은 아닐지라도 대개 과장이 아니냐고 의심할 사람들에게, 나는 입술을 깨물면서 둘 다 아니라고 단호히 말할 것이다. 이것은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이다.’ 호기심이 동했다. 마침내 책을 펼치고 또 덮기까지 나는 계속해서 이 추천사가 과장이 아니었음을 확인했다. 이런 좋은 소설은 감히 추천할 수 있고, 또 많은 사람이 읽기를 바라게 된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자본적으로 우위에 있는 사람이, 욕심이 많은 사람이, 남의 아픔에 둔감한 사람들이 이와 같은 소설을 읽고 뭔가를 느끼고 변하길.

『소년이 온다』의 1장은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돕는 일을 하게 된 중학교 삼 학년 동호의 시선을 따라 서술된다. 다만 흔히 소설에서 사용되는 ‘나’라는 주어가 아닌 ‘너’라는 주어로 쓰여 있다. ‘비가 올 것 같아./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p.7’

개인적으로 ‘너’라는 주어를 쓰는 이인칭 소설은 독자가 거부감이 들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반복해서 ‘너’를 부르고, ‘너’의 행동, ‘너’의 마음을 써내려간다. ‘너’는 작가가 직접 지칭하는 등장인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책을 읽는 독자를 향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독자들은 마치 자신이 ‘너’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작가의 권력이 느껴지기도 하는 방식이다. 작가라는 전지적인 사람이 ‘너’라는 인물의 내면을 꿰뚫고 있는 듯이 서술되니까. 인물이 더 독자에게 밀착되므로 인물의 내면을 함부로 속단하면 탄로가 나기에 십상이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 작가가 인물을 ‘너’라고 지칭하는 것이 폭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작가 한강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조심스럽게,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정확하게 인물을 묘사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작가에게 또한 치열하고 커다란 것임을, 오랫동안 골몰하고 파고든 흔적이 문장 하나하나에 스며들어 있다. 단순히 손으로만이 아닌 온몸으로 쓴 글이다.

너는 앞장서서 모서리의 사람을 향해 걷는다. 거대한 자석 같은 게 힘껏 밀어내는 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네 몸이 뒷걸음질치려 한다. 그걸 이기려고 어깨를 앞으로 수그리고 걷는다. 천을 걷기 위해 허리를 굽히자, 파르스름한 촛불의 눈동자 아래로 반투명한 촛농이 흘러내리고 있다. 혼은 자기 몸 곁에 얼마나 오래 머물러 있을까. 그게 무슨 날개같이 파닥이기도 할까. 촛불의 가장자릴 흔들리게 할까. -p.44~45

처음에 이 책을 삼 분의 이 정도 읽었을 때는 고통스럽고 우울했다. 인물들의 고통이 깊숙이 파고들어 왔다. 인간이 인간에게 이렇게 잔혹할 수가 있을까.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기에 더욱 그렇기도 했다.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어떤 단어들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돌고 기분이 가라앉았다. 아직도 광주가 끝나지 않았다는 작가의 말처럼 사회 곳곳에서 욕심 때문에 희생되고 있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이런 절망 속에서 어떤 태도를 가질 수 있을까, 희망을 품을 수 있을까.

그러나 이런 절망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은 희생된 이들이 바라는 게 아닐 것이다. 이러한 세상에 어떤 희망을 꿈꿀 수 있겠어? 하고 절망 속에만 침잠해 있는 것은 상황을 낫게 만드는 것이 아님을, 오히려 더 악화시킬 수도 있을 것임을. 어차피 정치라는 건 다 거기서 거기라며, 선거를 포기해버리는 행동처럼 세상이 끔찍하다고 방구석에서 우울해하고 있는 것이 바람직한 행동은 아닐 것이다.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p.213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더 밝은 쪽으로. 더 거짓이 없는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말이다. 그게 작은 움직임이든 큰 움직임이든 중요한 것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기억하고 애도하고 움직일 것.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은 채 묻어두고 잊히게 하지 않을 것. 나는 우매한 사람이라 이 움직임을 정확히 정의하기는 어렵다. 생각해야 할 것이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더 나아갈 수 있을까. 그들과 우리를 위해 어떡하면 더 빛이 비치는 쪽으로 갈 수 있을지를.

임효진 독서를 좋아하는 이십 대 여성. 직접 쓴 소설책 하나 내는 것이 꿈이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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