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톡톡 – 그들 각자의 ‘숏컷’ – 제 13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장르의 상상력展’

오유정

그들 각자의 숏컷

  • 제 13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장르의 상상력展’

올해로 13회를 맞은 미쟝센 단편영화제가 지난 6월 26일부터 7월 2일까지 메가박스 이수와 아트나인에서 열렸다. 미쟝센 단편영화제는 매년 다수의 작품을 출품 받으며 성황리에 진행되었으며, 희극지왕(코미디), 비정성시(사회적 관점을 다룬 영화), 절대악몽(공포, 판타지), 4만번의 구타(액션, 스릴러),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멜로드라마)으로 총 다섯 구성으로 상영되었다. 장르로 영역과 특징을 세분화한 콘셉트는 기존 단편영화제들의 구조와 명백히 차별된다. “단편영화는 실험적이고 어려울 것이다.”라는 편견을 부수고자한 노력이 엿보이는 미쟝센 단편영화제는 비틀고, 휘젓고, 가로지르는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주는 ‘발칙함’을 존중하며 기존의 엄숙주의와 아마추어리즘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이러한 미쟝센 단편영화제의 매력 때문에 매번 동행자의 표까지 사재기하기에 추천하고 싶은 작품 세 편을 소개하려 한다.

1.「만일의 세계」임대형 감독, 2014, 20분 39초

“여기선 사랑하는 뭔가를 위해 춤을 추는 거야.” 만일과 주희는 오래된 연인이다. 만일은 취직 준비에 바쁜 주희에게 일몰을 보러 가자고 제안한다. 일몰을 보기위해 산을 오르는 둘 사이는 날씨만큼이나 냉랭하다. 제대로 가고 있느냐는 주희의 물음에 만일은 모호하게만 답할 뿐이다. 둘의 대화에는 접점이 없다. ‘왜.’로 시작해서 ‘만약에.’로 끝나는 질문을 시종일관 늘여놓는 만일을 보며, 주희는 취직이며 미래에 맞닿은 현실이 그저 막막하고 불안하기만 하다. 영화는 만일과 주희가 함께 일몰을 바라보는 과거의 한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화면을 메운 노란 빛과, 점처럼 작은 태양을 만일은 구멍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둘의 세계가 그 날 그 구멍을 통해 사라졌다고 믿는다. 사라진 세계는 어디로 갔을까. 이 비현실적이고 우스꽝스러운 만일의 세계에서 관객이 만일에게 마음이 기울 수 있었던 것은 비극적 결함을 가진 인물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전부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 하나인 전부를 포기하는 만일에게서 비롯되지 않을까 싶다. 또한 이장욱의 동명의 시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이 영화는 시를 현실로 옮겨오려는 감독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2.「다정하게 바삭바삭」,장영선 감독, 2013, 23분 48초

“나를 먹어요.” 신제품인 ‘메론볼’은 스테디셀러인 ‘초코볼’과 묶음 판매로 매대에 서야지만 판매가 되는 ‘원 플러스 원’ 인생이다. 실은 판매가 되는 것도 미지수이다. 과자들에게 삶이란 먹히거나 버려지거나 둘 중 하나이다. 조악한 끈에 묶인 ‘초코볼’과 ‘초코볼‘을 동경하는 ’메론볼’이 있다. 그리고 이미 부셔져 창고 구석에 버려진 ‘다이제’는 과자들의 유배지인 어두운 창고에서 ‘먹히기’만을 기다린다. ‘나를 벗겨요, 나를 먹어요.’라고 노래하는 과자들의 존재 이유는 어설프다. 그러나 끝까지 진지함을 유지하는 게 매력인 이 영화는 여성들의 비주류 문화인 동성애 코드를 발랄하고 재치 있게 끌어 올린다. 매사 부정적이고, 다시 상처받기를 두려워하는 ‘다이제’와 ‘다이제’에게 다정한 손길을 내민 ‘메론볼’은 끝내 ‘먹히는’ 행복을 누리고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는 배우들의 비주얼 또한 주의 깊게 엿볼 특징이기도 하는데, 분명 이 단편을 본 여성 관객들을 한두 번쯤은 주책없게 올라가는 광대뼈를 잡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3.「플라멩코 소녀」이찬호 감독, 2013, 29분 58초

소녀는 춤을 춘다, 오늘도.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 내일(Tomorrow)과 내 일(My job) 사이처럼 어찌 보면 같은 말처럼 들리기 쉽지만, 이 두 단어에는 작은 차이가 있다. 그 작은 차이가 우리를 일상에서 일탈로 벗어나게끔 한다. 오늘날, 취업이라는 과제는 20대뿐만아니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이 섹션의 영화는 말한다. 대학을 졸업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이 모두 취업의 과정인양 치부되는 척박한 현실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야 한다고. 서로를 위해서 또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영화 「플라멩코 소녀」에서 정혜는 취업을 앞둔 여고생이다. 정혜의 일상은 취업 면접에서 변변치 못한 성적을 받아 담임에게 듣는 핀잔과, 도둑으로 모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사장의 질책으로 어둡다. 제대로 임금도 치루지 못한 채 쫓겨난 정혜는 아버지의 생일날 아버지와 약속한 한강 유람선 간판에 멍하니 서있다. 멍하니 서서 검은 강 저편을 바라보며 소리 지른다. 그리고 춤을 춘다. 견디기 위해서. 나아가기 위해서. 현실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이 영화는 우리에게 마음속의 플라멩코 소녀를 꺼내게 한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 현실과 꿈의 괴리 속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열심히 스텝을 밟는 정혜를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아쉽게도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대상 수상작은 없었지만, 대한민국 단편 영화 수가 미쟝센 단편 영화제 출품수와 맞먹는다는 미쟝센 단편 영화제의 자랑처럼 이러한 다양한 시도를 위한 발판이 앞으로 많은 영화인들에게 발돋움 할 수 있는 소중한 구심점이 되길 바란다. 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는 9월 1일까지 올레TV와 모바일올레에서 상영된다고 하니 이 매력적인 기회를 집에서도 편하게 즐길 수 있다. 올 여름 휴가는 맥주와 함께 암전된 방 안에서 예측불가의 통통 튀는 ‘미쟝센’들과 함께해보자.

오유정 잘 하는 것보다 하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하자.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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