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쌀 개방의 위기를 농업회생의 일대전기로 만들자! – 손영준

손영준

쌀 개방의 위기를 농업회생의 일대전기로 만들자!

정부가 지난 7월 18일 느닷없이 내년 1월 1일부터 쌀 관세화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정부의 선언대로라면 앞으로는 누구나 관세만 내면 국내로 쌀을 수입할 수 있게 된다. 예외 없는 농산물 개방을 주 의제로 다룬 우루과이라운드(UR) 이후 20년 만에 마지막으로 남은 쌀 시장이 전면개방 될 상황에 놓였다. 정부는 현재 쌀 관세화 유예 조건으로 수입되고 있는 40만 9,000톤(연간 국내 쌀 소비량의 9%)의 외국 쌀이 있는데 관세화 유예를 또 연장할 경우 이 의무수입물량(MMA)을 더 늘려줘야 하는데 그럴 경우 국내 쌀 산업은 더 위협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쌀 관세화 문제에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정부 주장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의무수입물량을 더 늘리는 것에 찬성하는 이가 없다. 그러나 “쌀은 주권이요, 생명이다.” 라는 말처럼 쌀은 우리의 주식이므로 다른 농산물과는 달리 식량 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따라서 농민들과 공청회 몇 차례하고 정부가 마음대로 관세화(전면개방)하겠다고 선언할 수 없다. 어떻게 식량안보의 문제를, 나라의 주권과 국민의 생명이 걸린 문제를 이렇게 쉽게 처리할 수 있단 말인가? 1991년 우루과이라운드(UR)가 개최되기도 전인데 “예외 없는 농산물 개방”이 주 의제라는 소식에 대한민국 국민 1,300만 명이 UR 반대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국민적, 사회적 합의 없는 쌀 관세화 결정은 무효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쌀 개방의 역사를 살펴보면 1991년 UR 소식이 전해지고 쌀 개방 반대여론이 높아지면서 1992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걸고 쌀 개방을 막겠다”는 유명한 어록을 남겼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 때인 1993년 12월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 타결되고 한국도 이에 동참하면서 쌀시장 개방은 현실로 다가왔고 세계무역기구(WTO)가 1995년 1월에 출범하면서 전 세계는 농산물 시장을 상호 개방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다만, 쌀과 같은 식량 안보 관련 품목은 관련국의 반대 여론을 고려해 ‘유예’를 인정받게 되었다. 한국도 유예 국가에 포함되어 쌀시장 개방을 유예하는 대신 일정량의 외국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부분 개방으로 쌀 시장 개방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쌀 의무수입물량이 1995년에 약 5만 톤, 2004년에는 20만4천 톤, 2004년 재협상의 결과로 매년 2%씩 의무수입물량을 늘린 것이 2014년에 40만 9천 톤에 이르게 된 것이다.

안전한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권리는 국민의 기본권이며, 기후변화로 인해 일상화된 이상기후는 쌀을 비롯한 농업생산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으므로 선진국일수록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 식량 무기화 시대가 이미 도래되었다. 한국농업에서 쌀은 어떤 의미인가? 우리나라에서 쌀은 국내 여러 농산물 중 하나의 품목이 아니라 한국농업의 근간이며 식량자급의 원천이다. 쌀은 전체 농업소득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고 쌀 재배면적은 전 경지면적의 60%, 쌀 재배농가는 전 농가 수의 75%에 이른다. 무엇보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동안은 100% 이상 자급하던 쌀 덕분에 25% 내외의 식량자급률을 지켜왔지만, 쌀 자급률이 83%(2012년 기준)로 떨어지면서 전체 식량자급률은 22.6%, 쌀을 제외하면 3.7%로 대한민국의 먹을거리 현실은 이미 ‘참사’ 그대로다. 1980년 우리나라가 냉해로 쌀 생산량이 급감하자 국제시세의 2.5배 가격을 주고도 겨우 식량을 구해야만 했던 경험을 상기해야 한다. 그 때문에 쌀 개방은 백번 천 번이라도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쌀 개방이 아니더라도 지난 20년간 2004년 한-칠레 FTA(자유무역협정) 발효를 시작으로 2014년 현재 한-미, 한-EU, 한 -아세안 등 49개국과는 협정발효, 3개국과 협정타결, 14개국과 협상진행, 협상준비 21개국 등 이미 전 세계 주요 교역국들과 모든 분야에서 시장개방은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산물 분야도 한-중 FTA를 올해 안에 끝내자는 대통령의 의지로 볼 때 양허 제외 품목 10%에 농산물을 대부분 포함하겠다는 대책에도 불구하고 농산물 시장 전면개방의 대세를 거스르기는 어렵다. 따라서 지금이 한국농업의 운명을 결정지을 시기다. 도시와 농촌, 생산자와 소비자, 국민 모두가 나서서 농업 회생을 위한 대책을 세우는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농산물 시장개방이 전면화된 지금, 우리 농업을 유지발전 시키기 위한 대책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나라의 주권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농업을 지키고 살리는 일을 더 미룰 수 없다. 농업이 지속하도록 농지보전, 농가단위 소득보장, 종자 보존, 기초농산물 국가수매,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 농민의 권익을 지켜 줄 법적 기구(농업회의소) 설립, 친환경 유기농업의 확대 등 농민과 소비자, 정부가 모두 머리를 맞대고 한국농업, 농촌, 농민을 지키고 살릴 대책을 찾는 데 집중해야 한다.

“땅이 있는 한, 씨 뿌리기와 거두기,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멈추지 않으리라” (창세 8,22) 라는 창세기의 한 구절처럼 우리 농민들은 오랜 세월 동안 묵묵히 땅과 함께 하느님 창조사업에 동참해왔다. 그리고 대한민국 농업, 농촌, 농민의 어려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60년대 말부터 산업화, 저곡가정책으로 농촌에서 쫓겨나 산업일꾼이라는 핑계로 도시빈민으로 살아야 했던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농민들은 늘 희생양으로 살아왔다. 우리 사회에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있지만, 농민들만큼 억울하게 가난한 사람이 없다. 자신의 나태함과 무지 때문이 아니라 외부적인 상황 때문에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참으로 정의롭지 못하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복음의 기쁨 48항에서 밝힌 “우리 신앙과 가난한 이들의 유대”를 지금 여기 우리 농민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찾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20년 전 UR로 농산물 시장개방이 본격화될 즈음인 1994년, 우리농촌살리기운동 천주교본부를 창립시켰다. 창립선언문에 나타난 그 당시 농업, 농촌, 농민의 현실과 전망은 외국농축산물의 수입개방과 부적절한 농업정책으로 우리 농업은 축소, 왜곡되고 농촌공동체의 해체, 자연 생태계의 훼손, 우리의 밥상은 농약투성이 수입농산물로 채워질 것으로 전망하였다. 오늘의 현실을 너무나 정확히 전망하고 있다. 또한, 현대 산업 사회적 혼란과 비인간화 현상은 농업적 삶의 가치를 포기한 데서 비롯된 것이므로 “함께 살고 모두를 살리는 길”을 우리 농촌을 살리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고 호소하였다.

그로부터 20년, 전국 도시성당 220여 곳에 농산물 직판장이 생겨나고 전국 70곳에 농촌생활공동체(가톨릭농민회 분회)가 조직되어 연간 100여 회 도농교류와 350억 규모의 농산물을 비롯한 물품 나눔을 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 농촌은 여전히 어렵다.

2014년 지금, 예상되는 위기가 아니라 위기가 현실로 왔음을 분명히 알고 행동해야 할 때다. 이즈음에 한국 가톨릭교회는 “일용할 양식”을 중심에 놓고 참된 나눔과 형제적 연대를 실천하는 “우리농촌살리기운동”에 더욱 많은 관심과 실천을 보여야 한다. 또한, 하느님 창조질서를 보전하고 생명의 먹을거리를 제대로 나누기 위해 우리 사회 전체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사회복음화에 더욱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우선, 신자들의 밥상과 사제관의 식단을 바꾸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믿음과 생활을 일치시키는 우리농촌살리기운동, 도시와 농촌이 함께하는 생명공동체운동에 교회와 신자들의 동참을 다시 한 번 호소한다. 이 일은 바로 우리 자신의 일이요, 모두의 일이기 때문이다.

손영준 가톨릭농민회 사무총장. 도시와 농촌의 공동체가 함께 하느님 창조질서를 보전하고, 한국농업 ․ 농촌 ․ 농민을 지키고 살리는 우리농촌살리기운동에 힘쓰고 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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