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단짝_행복한 삶 자체가 우리의 활동입니다_ 원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참석자: 변동현 (요세피나) 간사, 이동훈 신부 (프란치스코)

행복한 삶 자체가 우리의 활동입니다_ 원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지난 7월, 부산에서 천주교 정의평화환경 활동가 연수가 있었다. 연수 마지막 날, ‘우리는 이렇게 살아왔다’는 활동 보고 시간에 활동가들의 시선을 잡아끈 팀이 있었다. 원주 정의 평화위원회 (이하 원주 정평위)였다. 짤막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한 원주 정평위 팀의 발표는 유쾌했다. 발표를 맡은 변동현 (요세피나) 간사는 아직 원주 정평위의 활동은 미미하고,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고 말했지만 사진 속에 담긴 활동 모습은 발랄했다. 유쾌한 활동을 이어 오고 있는 그들의 관계의 비결이 궁금했다. 이제 힘찬 첫걸음을 내디딘 원주 정평위의 변동현 간사와 이동훈 신부를 만나보았다.

이동훈 신부와 변동현 간사의 인연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동훈 신부는 원주교구 정평위 위원장으로 부임하고 난 뒤 사제들로만 구성되어 있던 정평위를 평신도들과 함께하는 곳으로 만들고자 했다. 활동도 침체하여 있었고, 운영과 회의도 안 되던 시기였다. 평신도들은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으니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사제는 뒷받침을 해주는 시스템이 마련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되려면 실무적인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 필요하니 간사를 수소문하던 와중에 아는 분의 소개를 통해 변동현 간사를 만나게 된 것이다. 보통 다른 단체들은 상근 간사와 함께 일하지만, 원주 교구 정평위는 상근 간사를 두고 있지 않다. 변동현 간사의 원래 직업은 노무사지만, 정평위 일은 반 상근으로서 함께 하고 있다. 직업의 특성상 몹시 바빴기에 처음에는 간사를 맡아줄 수 있느냐는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회 교리 공부 모임의 장소를 변동현 간사가 일하는 사무실로 제공하면서 계속 참여를 하게 되고, 실무적인 부분을 조금씩 맡아서 하게 되니 어느새 일을 맡고 있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정평위 일에 재미를 붙였고, 작년 12월 즈음에 간사 일을 하겠다고 자원했다.

정평위 구성원들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한 달에 두 번씩 진행했던 사회 교리 공부 모임을 통해서였다. 열 명 정도로 이루어진 원주 정평위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사회단체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이들이 많다. 그 전에 운동가로서 활동 할 때와는 달리, 교회 안에서 운동을 할 때는 우리가 왜 이것을 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기에 사회 교리 공부 모임을 제안했다고 한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6개월을 했는데 반응이 뜨거웠고, 곧 한 달에 두 번씩으로 공부 모임의 횟수가 늘어났다. 이 신부는 “평신도들이 스스로 왜 교회의 일을 해야 하는지 인식하게 되면서 자발적으로 정평위 내 분위기가 만들어진 거죠. 그래서 간사를 하겠다고 자원한 것도 이런 영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라고 말했다.

“운동 단체나 사회단체에서 활동을 하다 보면 상처도 많이 받고 실망도 많이 하게 되는데, 그런 부분에 대한 공허함이나 그런 걸 가지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 모임을 통해 영성적으로,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내 삶에서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찾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내적으로 힘이 많이 생기는 것 같더라고요. 그 전에는 가톨릭 신자이지만 삶과 신앙이 따로따로였던 거죠. 공부 모임을 통해서 삶과 신앙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하나라는 인식을 많이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지쳐있었던 부분에 대해 힘도 많이 얻게 되고 내적인 부분이 채워지게 되었죠.” _변동현 간사

사회 교리 공부 모임은 원주 정평위의 구성원들을 신앙으로 탄탄하게 묶이게 하는 역할을 했다. 삶과 신앙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하나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면서 내적인 부분이 채워지게 되었다. 변동현 간사는 정평위 구성원들이 다른 단체 활동도 하지만, 특히 정평위 활동을 재미있어 하는 이유가 이런 것 때문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신앙을 지키는 것도 하나의 일이었지만, 이 모임을 통해서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를 찾았기 때문이다.

원주 정평위의 구성원은 꽤 다양하다. 한살림에서 일하시는 분, 교구의 사회복지팀에서 일하는 분, 대학교수, 시민 단체 대표 등 각 단체에서 꾸준히 활동하는 이들이다. 이렇듯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활동을 하고, 안건을 정하는 데 있어서 생기는 갈등이나 어려움이 없지는 않을까 궁금했다. 뜻밖에도 서로에게 기대하는 바가 많지 않았기에 가능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무도 일 할 사람이 없으니까 무리하게 사업을 안 벌였어요. 우선 공부부터 하자고 했어요. 공부 모임 시간이 퇴근 이후이니까 저녁 식사를 다들 하지 못해요. 그러니까 공부 모임 끝나고 식사하는 자리에서 사회 현안을 얘기하다가 거기에서 결정하고 추진을 하죠. 따로 회의해서 작전을 짜는 게 아니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활동이 된 거예요. 이 모임에서까지 일처럼 하면 안 되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끼리 재미있게 놀자고 했죠. 할 수 있으면 하고…. 지치지 말고.” _이동훈 신부

공동체 안에서 어떤 일을 진행하게 될 때 스스로 어떤 것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다. 때로는 그것을 기쁘게 희생하기도 하지만 이 부분이 때로는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렇지만 ‘재미있게 놀자!’는 신념 덕분인지 원주 정평위는 어떤 활동에 대한 성과를 내는 것보다는 이 안에서 스스로 행복을 찾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다. 각자의 삶에 대한 상당 부분의 인정이 있었기에 이런 것이 가능했다. 이 신부가 항상 강조하는 말은 “내가 행복해야지 행복한 사회도 만들 수 있고,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는 건 도움이 안 된다.” 는 것이다. 이렇듯 서로의 삶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데에서 이들의 파트너십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변동현 간사도 때로는 쏟아지는 정평위 일에 지치기도 했고,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처리하게 돼 항의를 받기도 했다. 힘든 마음에 투정을 부릴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이 신부의 이야기는 “네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정평위 일이 잘되는 게 아니다. 욕심을 버려라.” 는 것이었다. 이런 일들을 통해 구성원들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사회 교리 학교도 다른 곳처럼 1기, 2기 이런 식으로 나누어 하자는 계획이 추진 중이었지만 말끔히 접었다. 섭섭한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은근한 불’처럼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원주 정평위의 파트너십은 오히려 서로 부족한 점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다른 구성원들은 반 상근이지만 바쁘게 일하고 있는 변동현 간사의 어려움을 알고 있기에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그 부분을 채우려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움을 주려고 했다고 했다.

옛 이야기의 한 대목이 떠오르는 부분이다. 항상 텅 비어있는 동생의 곳간을 남 몰래 채워주는 형과, 형의 곳간이 비어있는 것을 본 동생 역시도 형의 곳간을 밤마다 채워주며 우애가 깊어졌다는 어느 형제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이런 배려와 나눔은 곧 활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원주 정평위의 회지인 「바위틈에 피어나는 꽃순」같은 경우도 전직 기자였던 정평위 구성원 중 한 분이 활동 보고를 담은 회지를 펴내면 어떻겠냐고 제안해서 나오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인상적이었던 것은 ‘일’과 ‘신앙’이 분리되지 않고 삶 속에서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정평위 구성원들 역시도 여기서 공부한 사회교리를 바탕으로 각자 활동하는 단체들에서 이것을 실천할 수 있는 장으로 만들고 있고, 그렇게 사는 것 자체가 ‘활동’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래서 정평위에서 하는 행사에 머릿수를 채우는 것 자체에 연연하지 않는다. 모임을 할 때도 재밌게 와서 놀다 간다는 걸 중심으로 하고, 현재 이 신부가 맡은 금대귀농학교 같은 경우에도 ‘하느님이 잘 활용하라고 주신 이 장소를 활용하지 못하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다. 일하거나 사업을 할 생각을 하지 말고 여기서 쉬어라.’ 라고 누누이 이야기했기 때문에 곧 정평위 활동 자체가 영성적인 부분을 채워주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신앙생활인 것이다.

“오랫동안 같이 일할 수 있는 단짝으로서 하려면 서로에 대한 배려가 가장 중요하고. 상대방을 상대방으로서 존중해주는 것이 중요하죠. 모든 단짝이 마찬가지겠죠. 인정해주지 않고 내 생각대로 모든 것들을 해서 한 사람이 이끌어 갈 때 단짝이라고 말할 순 없죠. 끌려가는 거니까. 서로의 위치에서 자기 역할을 하고, 배려해주고 지지해줄 때 단짝으로 남을 수 있는 것 같아요.”_이동훈 신부

“믿음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각자 여기 있는 사람들도 사회에서 한 자리씩 하시는 분들이라 성격도 다 안 좋은 사람들도 많아요. 신부님도 그다지 성격이 좋으신 건 아니거든요. 저희끼리 농담으로 ‘성격 안 좋지만, 영성 보고 간다’ 그러거든요. (일동 웃음) 그 성격 때문에 부딪히는 부분들도 있지만, 하느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 한 길을 간다는 형제 자매애나 동지로서의 이런 것들이 바탕이 되다 보니까 기본적인 믿음이 많이 생겨요. 제가 항상 신부님이 어떤 활동하시는 데 있어서 정평위의 공식 활동이 아니더라도 옆에서 도움을 드리려고 노력하는 게 있어요. 일단은 기본적인 신뢰 관계가 바탕이 되면 파트너십이 자연스럽게 형성이 되는 것 같아요. 나중에 정평위 위원장 신부님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활동 속에서 같이 간다는 믿음이 있어요. 그게 진정한 단짝이 아닐까요?”_변동현 간사

각 사회단체로부터 연대를 요청하는 외부적인 활동 제안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안의 내실을 잘 다져야 다른 단체들에게도 진정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파트너십은 ‘삶과 함께하는 운동’ 이라는 의식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재미있게 놀며 삶 안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한다는 이들. 인터뷰를 진행하며 신앙과 삶은 따로따로 분리될 수 없으며 항상 함께 가야 하는 ‘단짝’ 같은 존재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이런 믿음이 있는 한, 원주 정평위 구성원들의 파트너십 역시도 계속 이어지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단단한 연결고리가 있기에 이 길을 동반자로서 함께 걸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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